눈이 소복히 쌓인 속리산 법주사를 마지막으로 이번 답사는 끝난다. 속리산 법주사를 들어가는 길은 5리라고 한다. 그래서 오리길이라고 하는데, 사이에 펼쳐진 소나무숲들이 한적한 산사의 분위기 그대로이다. 이렇게 사찰입구를 멋진 무들이 장식하는 숲속길은 흔치 않은것 같다. 승주 송광사, 부안 내소사의 숲길이 유명하다.

숲이 우거지고 우거져 쨍쨍이 떠 있는 햇볕도 볼 수 없는 숲길이지만, 흙내음, 물소리, 녹색빛에 마치 뭔가에 홀린듯 들어가는 숲길들이 괜시리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거기에 눈이 쌓였으니 금상첨화일것이다.

소복히 밟히는 눈을 밟으며 들어가는 숲길이 한적하고 즐겁다. 아이들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주변을 즐기기보다는 눈에 푹 빠져있다. 이리 미끌 저리 미끌거리며 장난치기 일쑤다. 몇 분정도 걸었을까? 매표소가 나오고 저 뒤로 법주사가 펼쳐진다. 눈이 쌓인 법주사에 온 적이 없기 때문에 괜시리 마음이 두근거린다.

저 멀리 높다랗게 솟은 팔상전과 얼마전에 금을 입혔다는 청동미륵대불이 보인다. 금강문을 지나서 사찰의 경내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쌓인 눈을 걸어다닐 수 있게 치워놨다. 하지만 뭔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바뀐 것 같은 느낌, 예전에 고즈넉한 사찰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 멀리 대웅보전은 해체수리중이었고, 몇개의 건물들이 더 들어섰다. 덕분에 사찰의 고즈넉함과 넉넉함이 사라져버렸다. 거기다가 금을 입힌 청동미륵대불은 사찰의 조용함을 깨는것 같아 씁쓸하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이것도 물어보고 저것도 물어보고, 눈싸움도 하고 정신이 없지만, 나는 소중하게 생각했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아 괜시리 기분이 안 좋다.

처음 찾아갔을때 너무 좋아 마음속에 기분좋게 담아두었던 사찰들이, 어느날 가보니 들어선 건물들이 몇 채고 이리저리 채색한 건물들이 몇 개 들어서니 예전에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보물을 잊어버린 그 마음. 사찰들마다 그런 불사에 공을 들이고 있으니 예전의 모습은 간데 없고, 다시 오기가 싫어진다.

종교적으로 신도들을 위하여 건물을 몇 개 짓고, 다시 수리하는 것은 좋지만 예전의 모습은 간직하데 편리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다시 칠하고 새로 멋지게 짓는 것이 좋은 것처럼 인식된것이 잘못이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신 온고지신이 없어진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법주사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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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눈들이 온통 하얀 세상을 만들어버렸다. 괜시리 오늘의 일정이 걱정되지만, 비오는것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채비를 한다. 얼마나 추웠는지 버스도 꽁꽁얼어 히터도 틀어지지 않는다. 바람을 막아주는것만 해도 다행이지만 버스안도 영하의 추위다. 몇십분쯤 달렸을까? 고달사지에 도착했다. 고달사지는 고달이라는 석공이 자신의 불심으로 지은 사찰인데, 사찰을 짓는 동안 자신의 가족들이 모두 죽은 줄도 모르고, 중에 사찰을 지은후에 가족들이 죽은 사실을 알고, 승려가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고달사지에는 남아있는 건물은 없고, 석불대좌와 조각이 멋있는 귀부와 이수, 부도가 남아있다.

사지는 널찍하여 고달사지가 한때 대사찰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원종대사혜진탑은 탑비는 경복궁에 있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다. 이수의 화려한 조각이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 같다.

부도는 산록으로 약간만 올라가면 있다. 거대한 부도가 마치 지리산자락에 위치한 사찰들(태안사, 연곡사등)에 있는 부도를 보는 느낌을 주지만 조각의 멋은 그 부도들만 못한것 같다.

눈밭을 헤치며 이리저리 사지를 살펴보고, 다음 답사지인 서울로 향한다. 서울은 오랫동안 우리의 수도였던 만큼 어디를 가도 역사적인 볼거리가 많다. 길하나 골목하나에 우리가 살았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대도시로 커가면서 그런 흔적들이 조금씩 없어지고, 이제는 그 자리를 "X가 있었던 곳" 이라는 초라한 비만 지키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도시의 성장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과 함께 보호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서울에 도착하였다. 첫 답사지로 흥인지문으로 향한다. 흥인지문과 숭례문은 버스에서 살펴볼 수 밖에 없었다. 차들이 지나다니는 차도라 내려가 볼 수없기 때문이다.

흥인지문은 한양의 동쪽 대문이다. 유일하게 옹성을 갖춘 문이다. 옹성은 성문을 둘러싸 멀리서 봤을때 성문을 찾지못하게 하고 수비의 효율을 살린 구조물이다. 한양도성에는 8개의 문이 있었는데, 그 중에 흥인지문에만 옹성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숭례문이나 흥인지문 얘기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북쪽 대문 숙정문(홍지문) 얘기이다. 북쪽대문은 홍지문 또는 숙정문으로 불렸는데, 도성을 건립하고 얼마 안 있어 풍수지리상 닫아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 닫아두었다고 한다. 또한 북쪽 대문을 열어놓으면 도성의 아녀자들이 바람이 난다고 해서 닫아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도 군사시설상 북쪽 대문은 닫아져있으니, 북쪽 대문의 운명은 닫힘인가보다.

흥인지문을 살펴보고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탑골공원에는 원각사지10층 석탑이 있다. 원래 원각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연산군에 의해 없어지고, 기생집으로 쓰였다고 한다. 원각사지 10층석탑은 그 화려함이 조선시대 여느 탑과는 다른데, 탑신부에 새겨진 사천왕이며 불상들이 그 화려함을 더해주었다.

탑골공원의 입구에는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새워져있다. 독립선언을 기념하는 부조도 세워져있다. 탑골공원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광장기능을 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았다.

도시에서 광장은 군중들이 휴식처이자, 권력자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정치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탑골공원은 이런 측면에서 서울의 정치적, 오락적 측면을 함께 갖고 있다.

탑골 공원을 나와 경복궁의 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나도 중앙박물관은 처음가보지만 시간상 몇 개 유물만 살펴보고 나와야 할것 같다. 현재 중앙박물관은 임시로 경복궁에 있다. 용산에 새 박물관을 짓고 있는데, 그래도 박물관에 볼 것이 많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유물들이 모두 전국의 이름있는 사찰이나 유적지에서 가져다 전시한 것이라 약간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영국이 제국주의 침략을 행하면서, 이집트나 다른 다라들의 문화유산을 약탈하여 그 유명한 대영박물관을 세운것 같이, 중앙박물관도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문화재는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빛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화려한 조명과 많은 사람의 눈보다는 자신이 오랫동안 숨쉬어왔던 그 공기와 그 햇살속에서 빛을 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중앙박물관을 돌아보고 마지막 코스 숭례문으로 향했다. 한국을 상징하는 숭례문은 한양의 남쪽 대문이다. 높이 솟아있는 남대문은 오랫동안 조선의 문이요, 한국의 문이었다. 지금은 문 주위로 많은 차들이 통행하고 있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조선의 큰 대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대문을 드나들었던 많은 사람들을 내려다봤을 것이다. 마치 달관에 경지에 이른 스님처럼 묵묵히 한국의 문을 자처하며 지키고 서 있는 남대문이 이때처럼 포근하게 보인적은 없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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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후 꼼짝앉고 집에서 책을 읽고 지냈다. 그 동안 못 읽었던 책들을 쌓아놓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모처럼 여유를 찾은것 같아 즐겁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집안에는 있으면 않좋은 법! 기회를 틈타 잠시 바람을 쐬러 떠났다. 비록 내 돈들여서 간 답사는 아니지만 훌훌털고 떠나니 기분은 좋았다.

눈도 안내리는 겨울이지만, 아침부터 추위가 심상치 않다. 2박 3일을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겨서 집을 선다. 해가 뜨기 시작했지만, 매서운 새벽바람이 아직 남았는지 볼이 당겨온다.

집을 나설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이지만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을지, 뭐를 보고 올지 기대되는 마음은 괜시리 발검을을 재촉한다.

초등학생들의 가이드를 맡았으니,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내 설명이 어렵지나 않을지.

너무 못 알아들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어느덧 약속장소에 다달았다. 벌써 도착한 어린이들과 어머니들이 보인다.

집합시간이 되어 간단하게 행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앙상한 나무들이 겨울의 햇살을 받아 기지개를 쭉 펴는듯이 보이는 가로수를 지나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버스가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국보 1호부터 9호, 보물 1호부터 8호까지 2박 3일동안 답사하는 프로그램인데, 유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시간이 모자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일단은 기사님과 상의하여 오늘 하루에는 3곳만 돌기로 하였다.

첫 도착지는 부여 정림사지. 사진으로 봤지만 단아한 여성의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다른 탑들과는 달리 넓은 옥개석이 탑을 더욱더 단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기둥돌에는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이 남겨놓은 글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탁본을 해서 그런지 불에 그을린 듯 시커멓다. 이 글귀때문에 한때에는 '평제탑'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백제의 고도 부여는 여기저기 볼 것이 많아, 발걸음 닿는 곳이 모두 문화유적이지만 갈길이 바뻐 할 수 없이 차에 올랐다.

또 몇 시간을 달려 성주사지에 도착했다. 고운 최치원이 글을 짓고 그의 사촌인 최인곤이 글을 썼다는 낭혜화상의 비가 서 있는 곳이다. 사지에는 가운데 큰 탑이 서 있고, 대웅전 앞에 3개의 탑이 서 있었다. 넓디 넓은 사지의 저 끝에 보호각에 쌓인 비석이 보였다. 귀부의 머리부분의 파손이 심해 머리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또한 비문의 마모도 심했다. 하지만 최치원이 글을 지었다고 하여, 얘들에게 최치원얘기를 해줬다.

최치원이 비금도에 갔는데, 비금도 사람들이 비가 안와서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최치원은 비를 관장하는 용을 불러내어 비를 내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용은 비를 내리면 용왕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안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최치원은 자신이 알아서 할테니 비를 내리라고 하였다. 결국 용이 비를 내렸고, 비금도 사람들은 오랜 가뭄에서 해갈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용이 비를 내린것을 알게된 용왕이 용을 찾아오라고 사자를 보냈다. 용은 최치원에게 용왕이 나를 잡으러 사자를 보냈다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다. 최치원은 용을 도마뱀으로 둔갑시켜 자신의 소매에 넣고 사자를 돌려보냈다.

이 설화에서는 그의 신통력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용과 얘기를 하고, 둔갑술까지 쓸 줄안다. 이 얘기가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대단한 사람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갈수록 바람이 매서워져 설명은 얼른 마치고 차에 올랐다. 날씨가 더욱더 추워지는 것 같았다. 천안까지 또 몇 시간을 가야하기 때문에 길을 재촉했다. 바람이 매서워지면서 이슬비까지 흩뿌렸다. 피곤이 몰려와 잠시 눈을 감았다 떳더니 어느덧 도로가에는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눈은 멈출줄 모르고 계속 내렸다. 우리가 천안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함박눈이 되어 있었다. 봉선 홍경사 갈비 앞에 다다라 내리는 함박눈과 추위에 간단한 설명은 버스에서 하고 얼른 내려 비만 살펴보고 왔다. 비석을 받치고 있는 귀부가 사실적이다. 갈비는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것을 말하는데, 대개는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몸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비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어 석비의 형식과 다르지 않았다. 이름은 갈비였지만 석비라도 해도 될만했다. 얘들은 설명보다는 오랜만에 보는 눈이 더 즐거운듯 여기저기 눈싸움에 열중했다.

숙소까지 갈려면 아직 먼길을 가야하니 간단하게 비문을 지은 최충에 대한 설명만 마치고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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