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돌아오다!

2005/11/06 23:57
11월 4일부터 11월 6일까지 2박3일간의 제주도 여행.

오랫동안 준비했고, 약간의(?) 무리도 있었지만, 즐겁게 다녀왔다.
제주도에 가면 괜히 진지해지는 것이 난 아직도 제주도를 그리워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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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4년 2월 24일(화) 군산 답사를 다녀왔다.

군산은 목포와 같이 개항을 통해 발달된 도시이다. 목포와 다른 점이라면 목포보다 2년 늦게 개항되었다는 점. 목포에 대해 공부하면서 오래전부터 군산을 다녀오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날 수 없는 법!(심심하쟎아) 다행이전라도 닷컴의 꾸꿈스런 전라도여행의 예비답사를 위해 군산을 답사하게 되었다.


<구 조선은행 건물 : 정문이 없어지고 대리석으로 노래방을 증축하였다. 화재로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

광주에서 출발해서 1시간 30분을 달렸을까? 전주IC에서 빠져나와 전주군산간 자동차도로를 30분 달려, 군산에 다다른다.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압감있게 서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23년 신축 당시에는 경성을 빼놓고 이렇게 큰 건물을 볼 수 없었다고 하는 구 조선은행 건물이다. 빨간벽돌에 지붕이 높은것이 영낙없는 일본식건물이다. 구 조선은행 건물은 외관은 2층이지만, 4층 건물의 높이다. 일본식 건물의 지붕은 삼각형꼴로 높은것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중국인 인부들에 의해 건설되었고, 근래까지 유흥업소로 사용되다가 화재로 겉모습만 남아 아직까지 남아있다. 내부는 화재로 인해 검게 그을렸고, 외부는 원래 정문이던곳을 대리석으로 막아 간이 노래방을 만들었다.

<장기십팔은행 사무실 건물>

구 조선은행 건물을 보고, 쭉 걸어가면 장기십팔은행 군산지점이 온다. 지금은 쓰다 버린 중고품들의 알뜰매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장기십팔은행 건물은 건물 본관이 도로와 가까운 위치에 있고, 그 뒤로 사무실과 창고가 위치해 있다. 3건물 모두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내부도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 사무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2층의 모습은 일본건물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장기십팔은행에서는 은행에서 사용하던 금고를 확인할 수 있는데, 금고는 너무 무거워 옮길 수도 없었을뿐 아니라, 금고를 옮기기 위해서는 건물을 부숴야 했으므로, 그 자리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금고의 눈금까지 일본어로 되어 있었다. 금고는 동경에 있는 금고만드는 회사에서 직접 만들어 한국으로 가져온것 같았다.

<구 세관건물>

장기십팔은행을 보고 발걸음을 옮기다가 항구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면 군산해양수산청이 있고 그 맞은편에 군산세관이 있다. 구세관 건물은 군산세관의 민원안내실로 사용되고 있는데, 내년에는 군산시의 관리로 넘어간다고 한다. 원래 별관 건물이 있었으나, 철거되었고 지금은 창고와 구세관 건물만 남아있었다. 구세관 건물 역시 한눈에 봐도 단박에 일본식 건물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지붕은 높고, 거기에 뽀족하게 하여 고딕양식을 흉내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양식이다. 지붕은 마치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만들어져서 지붕만 빼면 서양식 건물과 같다. 건물안쪽은 비어 있어서 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사무실이 건물 깊숙히 안쪽에 위치하여 외부에서 햇빛을 받기 위해 채광창을 냈다.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지만, 민원인을 받기 위해 창문으로 구획을 정해놓은 것이 재미있었다. 난방을 위해 토치카를 설치했을 것 같으나, 토치카가 위치한 방은 잠겨있어서 확인할 수 없었다.

구세관을 나와 영화동쪽으로 발길을 옭기면 쭉 뻗은 길 양쪽으로 여기저기 일본식 집들이 눈에 띈다. 군산은 목포와 달리 많은 건물들이 외형은 보존하면서 내부를 수리하거나 외형과 내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도 이렇게 남아있는데, 그 이전 일제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건물들이 있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다.

<군산부윤관사 : 현 토성식당>

우리가 점심을 예약한 장소는 군산부윤의 관사였던 토성식당이다. 현재는 외부만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리모델링이라기 보다 건물외벽의 색칠을 다시 한것이라고 보면 된다. 내부는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일본식 집에서 나타나는 안쪽에 위치한 정원이 건물의 어디서든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두었다. 폭이 짧고 긴 복도와 거기에 위치한 방들, 나무의 쓰임새가 가히 군산부윤의 집답다.

<동국사 대웅전 건물>

군산 부윤의 집을 나와 약간만 올라가면 동국사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어느절이 이렇게 일본식 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까? 많은 절들이 '불사'를 지칭하며, 오래된 건물을 뜯어내고 새 건물을 짓는 이때에 동국사는 온전히 그 모습을 보전하고 있었고, 너무나 잘 보존되고 있어 놀라울 지경이었다. 동국사 건물의 나무는 일본에서 직접 운반해서 쓴 나무로 습기에 강한 스기나무 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찰 건물과 틀린점은 사찰의 본당인 대웅전과 승려가 거처하는 요사체가 붙어있다는 점이다. 요사채 또한 일본식 건물의 모습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었고, 폭이 좁은 복도도 가지고 있었다.

<한국제분관사 : 장군의 아들 하야시의 집>

동국사를 나와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니 2층으로 된 목조 일본건축물이 나왔다. 이곳은 한국제분 관사로서 이 건물이 자리한 신흥동 지역은 일제시대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거주지역이라고 한다. 한국제분 관사는 일본인 지주 히로쓰의 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화 장군의 아들 1편에서 하야시의 집으로 출현하였다.

<이영춘 가옥 : 모래시계, 빙점의 촬영지>

이후 군산의 입구쪽으로 빠져, 이영춘가옥으로 갔다. 이영춘 가옥은 구마모토 리헤이라는 사람이 지은 건물로 드라마 빙점, 모래시계를 촬영했다고 한다. 일본식 건물의 형식이라기 보다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별장형식의 통나무 집으로 개정병원 설립자인 이영춘 박사가 이곳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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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히 갈길을 재촉했다. 새해 첫 답사이자, 청주까지 혼자가는 겨울여행이다. 몇 가지만 챙기고 새벽거리를 선다. 찬 새벽공기가 밀려들어와 팔다리를 섬뜩하게 하지만, 길을 재촉해 버스터미널로 간다.

요근래 충북지역을 자주 드나들었지만, 시간에 쫒겨 사람들에 쫒겨 못내 못보고 온것들, 못 느끼고 온 넉넉함을다시 느끼러 간다.

6시 10분 첫 차에 몸을 실었다. 청주까지 가는 버스지만 새벽이라 승객이 몇 없다. 새벽부터 발걸음을 재촉해서 그런지 자리를 잡자마자 잠이 온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넓게 펼쳐진 들판 대신 쌓인 눈과 산들이 눈 앞에 들어온다. 이미 전라도지역을 넘어선것은 뻔하고 어디쯤인가 하고 눈을 굴리고 있을때 버스가 계룡대 휴게소에 정차한다. 1시간만 달리면 청주에 도착할 것 같다. 여기저기 쌓인 눈을 감상하며 가기를 1시간여...청주의 입구를 알리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을 지난다. 청주를 알리는 유명한 길이라고 하는데, 무슨 일들이 있는지 여기저기 프랑카드가 나풀거린다.

지역마다 다툼이나 갈등이 있기도 하지만, 이 조용한 플라타너스 길에도 다툼과 갈등이 있다는 생각에 괜시리 외부에서 오는 나 같은 사람도 기분이 씁쓸해진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함께 가기로 한 일행을 기다렸다가함께 국립청주박물관으로 향했다. 얼마전 학교에서 간 가을답사때 들렀지만, 사람들에 치여 띄엄띄엄 본 박물관의 외관하며, 여러가지 유물들을 넉넉히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푼다.

30여분 버스를 타고 달렸을까? 왼쪽으로 박물관이 보인다. 건축가 김수근씨가 설계했다는 국립청주박물관은 뒷산의 산세를 그대로 살린데다 눈꽃이 피어 멋있었다. 먼저 들어간 일행들을 따라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이미 살펴본 것들이지만 여기저기 다시 살펴보며, 예전에 왔을때 들었던 설명을 기억해낸다. 눈인사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둘러보기를 1시간여...관람을 마치고 박물관 앞 마당에 섰다. 앞산과 뒷산에 핀 눈꽃들이 아름답다. 여기저기 포즈를 취하고 뒷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다음 코스인 상당산성으로 향했다.

상당산성을 오르는 고개는 양옆으로 눈꽃이 피어 장관이었다. 함께 차를 타고가는 회원들이 우와~~우와를 연발..차를 세우네 어쩌네 야단법석이다. 고개를 넘어서자 상당산성으로 향하는 팻말이 보인다. 상당산성 입구에는 벗나무가 우거져 있다. 이 벗나무에도 눈꽃이 피어 눈꽃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다짐이 쏟아진다.

남자친구 생기면 같이와야겠네, 여자친구 생기면 같이와야겠네...(참...난감한 대사들이다..우리는 솔로부대?)

상당산성은 주위로 쌓인 눈들덕분에 여기저기 썰매를 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눈썰매 타자고 비료포대를 준비해오라는 말을 듣고 잘못하다가는 바보 취급을 당할까봐 관두자고 했더니...다른 사람들이 타는 모습을 보고 그런말을 했는가보다.

우리도 이에 질세라 눈썰매 대열에 합류했다. 챙겨간 비료포대를 깔고 엉덩이를 살짝 밀어붙이니 쭉 미끌어져 내려간다. 어렸을때 탔던 썰매를 흉내내며 여기저기 뒹굴어도 재밌기만 하다. 단체로 타고, 혼자타고 구르기를 몇 분여...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역시 눈썰매는 무게가 좌우한다. 몸무게로 밀어붙여 힘껏 내 달리니 시원하게 미끄러져 내려가 멈출줄을 모른다. 하여튼 이렇게 눈썰매로 어린 시절도 생각하고, 배꼽에 생기를 불어넣은 후 상당산성에 올랐다.

눈 쌓인 상당산성은 처음이다. 가을에 왔을때 녹색빛 보다 훨씬 멋있다. 상당산성은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장군이 지었다고 한다. 가야를 흡수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김무력장군같은 가야인들의 도움이 아니었을까? 신라의 문화, 정치를 휩쓸었던 가야인들 그리고 그들의 얘기가 사실 충북지역에 많이 남아있다. 탄금대도 그렇고, 상당산성도 그렇다. 삼국의 각축장이었던 만큼 옛 이야기들이 많고, 전설도 많다. 들판보다 산이 많지만 구비구비마다 할 애기도 많고, 보고싶은것도 많은것 또한 삼국이 맞물렸었고, 경쟁했던 곳이 충북이었기 때문이니라.


상당산성을 뒤로 하고 몇 분을 달려 점심을 먹을 식당에 도착했다. 점심요리는 닭 백숙. 푸짐하게 익혀진 닭 백숙이 나오자, 조류독감은 저리가시라~~!! 몽땅 달려들어 야들야들한 닭고기 살을 먹는다. 중간중간에 들어간 쌀밥이 더 고소하다. 거기에 누룽지가 들어간 닭죽을 먹으니, 배가 고파 추위까지 더하던 생각은 끝나고 따뜻한 방 차지하고 누울 생각밖에 안 난다.

눕고 싶은 생각을 멀리하고 다시 일어날 채비를 한다. 밖은 어두워지더니 눈발이 날린다. 다시금 길을 재촉하여 청주시내로 들어갔다. 청주시내 한복판에 서 있는 용두사지 철당간. 우리나라에 몇 없는 철당간이자 잘 생긴 당간이다. 특히나 이 철당간에는 누가 만들었고, 길이가 몇이며 등에대한 얘기하며, 신라의 관직이 나와 그때의 생활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이 당간을 소개하며, 이 당간에 새겨진 관직중 현재의 도교육감에 해당하는 관직이 나오는데, 청주가 괜히 교육도시가 된 것이 아님을 짐작하는 대목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청주가 교육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편리한 교통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사통팔달 안 뚫린 곳이 없이 어디든 갈 수 있는 지리적인 요건이 누구나 배우러 올 수 있고, 누구나 배워갈 수 있는 교육의 도시로 만든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또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직지가 인쇄될 수 있었던 것도 청주가 사방으로 열린 도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닌가? 인쇄기술은 곧 학문을 일으킬 수 있는 기초이다. 이것을 사방이 열린 도시 청주에서 한다면 그 기술은 삽시간에 번져나갈 것이다. 이것도 역시 지금의 청주가 만들어진 여건을 지리적으로 유추해볼 때 가능하다.

사방으로 열리고 사방에서 받아들이는 도시 청주는 그렇기 때문에 인쇄의 도시요, 교육의 도시였다.

이 사진은 문화유적답사회@무침님이 찍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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