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군산답사를 다녀왔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한국제분관사(히로쓰 가옥)에 들렀는데, 일이 생겼다.

한국제분관사에서는 "바람의 파이터" 영화 촬영이 한창이었다. 들어가면서 이 건물을 둘러 보러 온 답사객이라고 말하고 약간의 주의를 받고 들어갔다. 그러나 영화촬영 장비가 모두 설치되어 있었고, 내부는 절대 볼 수 없음을 알고 외부만 보자고 얘기하고 있는 참에 일이 벌어졌다.

일행이 4~5명이 아님을 안 영화사측에서 다른 답사객들을 제지하고 선것이다. 그리고 모두 나가라고 짜증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곳은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곳이다. 우리는 촬영중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니 나가달라" 고 하였다. 그래서 방해할 마음도 없고, 건물도 살펴볼 수 없어 나갈려고 했다. 그런데 영화사 사람들의 태도가 문제였다.

아주 고압적인 태도로 마치 귀챦고 짜증난다는 듯이 말을 했다. 얼굴을 보아하니 "이건 또 웬 떨거지들이야"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짜증나고 기분 안 좋은 얼굴 표정을 보고,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함께 간 선생님 중 한분이 "이 건물만 보면 됩니다. 아무 피해도 안 드리겠습니다" 했지만, 막무가내로 나가라고 짜증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기 비싼 돈주고 빌린 곳이다. 나가달라" 고 말했다.

"그래서 그럼 들어온 문 앞에서 설명하겠습니다." 했더니 무조건 "모든 소리가 마이크에 녹음된다. 나가달라" 고 했다. 참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주인 아저씨! 어디있어! 이 양반이 돈을 받고 이게 뭐야" 하며 짜증을 냈다.

더 기분 나뻤던 것은 우리를 내쫒고 대문을 잠그고 나서, 안에서 다른 스텝들에게 "누가 들여보냈어!" 며 화를 내는 모습이었다. 밖에 우리가 뻔히 있는데, 들으라고 하는 얘기인가?

우리가 답사한 한국제분관사(히로쓰 가옥)은 말 그대로 (주)한국제분의 관사로 한국제분의 소유이며, 관리인이 관리를 하고 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중요한 근대건축물로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제분의 소유이기 전에 누구나가 보존하고 가꾸어야 하며, 관심을 가져야할 문화재이다. 그런데 돈주고 빌렸다는 이유로 그 건물을 보기 위해 멀리서 달려온 답사객들을 내쫒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그것보다도 "잠재적인 관객" 인 답사객들을 그렇게 기분 나쁘고 짜증난 표정으로 나가라고 해야 했는가?

아무리 2~3일 밤을 지새서 피곤하다지만, 그들이 말하는 표정은 "씨바! 2~3일 날세서 짜증나니까, 지랄하지 말고 나가라!" 는 그런 표정이었다. 소위 "예술인" 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따위 태도로 나와야 하는가? 돈주고 빌렸다고 오만한 것인가? 띠껍한 것들 왔다고 짜증부리는 것인가?

짜증내고 오만해지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그때 짜증내면서 "나가주세요!" 하기 보다, 조금 더 친절하게 "바람의 파이터"를 촬영하고 있음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면...1석 2조가 아니었을까? "바람의 파이터" 스텝분들! 생각해보쇼. 어떤것이 자신들한테 더 이득인지.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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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4년 2월 24일(화) 군산 답사를 다녀왔다.

군산은 목포와 같이 개항을 통해 발달된 도시이다. 목포와 다른 점이라면 목포보다 2년 늦게 개항되었다는 점. 목포에 대해 공부하면서 오래전부터 군산을 다녀오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날 수 없는 법!(심심하쟎아) 다행이전라도 닷컴의 꾸꿈스런 전라도여행의 예비답사를 위해 군산을 답사하게 되었다.


<구 조선은행 건물 : 정문이 없어지고 대리석으로 노래방을 증축하였다. 화재로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

광주에서 출발해서 1시간 30분을 달렸을까? 전주IC에서 빠져나와 전주군산간 자동차도로를 30분 달려, 군산에 다다른다.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압감있게 서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23년 신축 당시에는 경성을 빼놓고 이렇게 큰 건물을 볼 수 없었다고 하는 구 조선은행 건물이다. 빨간벽돌에 지붕이 높은것이 영낙없는 일본식건물이다. 구 조선은행 건물은 외관은 2층이지만, 4층 건물의 높이다. 일본식 건물의 지붕은 삼각형꼴로 높은것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중국인 인부들에 의해 건설되었고, 근래까지 유흥업소로 사용되다가 화재로 겉모습만 남아 아직까지 남아있다. 내부는 화재로 인해 검게 그을렸고, 외부는 원래 정문이던곳을 대리석으로 막아 간이 노래방을 만들었다.

<장기십팔은행 사무실 건물>

구 조선은행 건물을 보고, 쭉 걸어가면 장기십팔은행 군산지점이 온다. 지금은 쓰다 버린 중고품들의 알뜰매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장기십팔은행 건물은 건물 본관이 도로와 가까운 위치에 있고, 그 뒤로 사무실과 창고가 위치해 있다. 3건물 모두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내부도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 사무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2층의 모습은 일본건물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장기십팔은행에서는 은행에서 사용하던 금고를 확인할 수 있는데, 금고는 너무 무거워 옮길 수도 없었을뿐 아니라, 금고를 옮기기 위해서는 건물을 부숴야 했으므로, 그 자리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금고의 눈금까지 일본어로 되어 있었다. 금고는 동경에 있는 금고만드는 회사에서 직접 만들어 한국으로 가져온것 같았다.

<구 세관건물>

장기십팔은행을 보고 발걸음을 옮기다가 항구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면 군산해양수산청이 있고 그 맞은편에 군산세관이 있다. 구세관 건물은 군산세관의 민원안내실로 사용되고 있는데, 내년에는 군산시의 관리로 넘어간다고 한다. 원래 별관 건물이 있었으나, 철거되었고 지금은 창고와 구세관 건물만 남아있었다. 구세관 건물 역시 한눈에 봐도 단박에 일본식 건물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지붕은 높고, 거기에 뽀족하게 하여 고딕양식을 흉내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양식이다. 지붕은 마치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만들어져서 지붕만 빼면 서양식 건물과 같다. 건물안쪽은 비어 있어서 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사무실이 건물 깊숙히 안쪽에 위치하여 외부에서 햇빛을 받기 위해 채광창을 냈다.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지만, 민원인을 받기 위해 창문으로 구획을 정해놓은 것이 재미있었다. 난방을 위해 토치카를 설치했을 것 같으나, 토치카가 위치한 방은 잠겨있어서 확인할 수 없었다.

구세관을 나와 영화동쪽으로 발길을 옭기면 쭉 뻗은 길 양쪽으로 여기저기 일본식 집들이 눈에 띈다. 군산은 목포와 달리 많은 건물들이 외형은 보존하면서 내부를 수리하거나 외형과 내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도 이렇게 남아있는데, 그 이전 일제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건물들이 있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다.

<군산부윤관사 : 현 토성식당>

우리가 점심을 예약한 장소는 군산부윤의 관사였던 토성식당이다. 현재는 외부만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리모델링이라기 보다 건물외벽의 색칠을 다시 한것이라고 보면 된다. 내부는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일본식 집에서 나타나는 안쪽에 위치한 정원이 건물의 어디서든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두었다. 폭이 짧고 긴 복도와 거기에 위치한 방들, 나무의 쓰임새가 가히 군산부윤의 집답다.

<동국사 대웅전 건물>

군산 부윤의 집을 나와 약간만 올라가면 동국사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어느절이 이렇게 일본식 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까? 많은 절들이 '불사'를 지칭하며, 오래된 건물을 뜯어내고 새 건물을 짓는 이때에 동국사는 온전히 그 모습을 보전하고 있었고, 너무나 잘 보존되고 있어 놀라울 지경이었다. 동국사 건물의 나무는 일본에서 직접 운반해서 쓴 나무로 습기에 강한 스기나무 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찰 건물과 틀린점은 사찰의 본당인 대웅전과 승려가 거처하는 요사체가 붙어있다는 점이다. 요사채 또한 일본식 건물의 모습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었고, 폭이 좁은 복도도 가지고 있었다.

<한국제분관사 : 장군의 아들 하야시의 집>

동국사를 나와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니 2층으로 된 목조 일본건축물이 나왔다. 이곳은 한국제분 관사로서 이 건물이 자리한 신흥동 지역은 일제시대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거주지역이라고 한다. 한국제분 관사는 일본인 지주 히로쓰의 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화 장군의 아들 1편에서 하야시의 집으로 출현하였다.

<이영춘 가옥 : 모래시계, 빙점의 촬영지>

이후 군산의 입구쪽으로 빠져, 이영춘가옥으로 갔다. 이영춘 가옥은 구마모토 리헤이라는 사람이 지은 건물로 드라마 빙점, 모래시계를 촬영했다고 한다. 일본식 건물의 형식이라기 보다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별장형식의 통나무 집으로 개정병원 설립자인 이영춘 박사가 이곳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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