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의 제주 올레길(1)

2011/11/06 12:43
올레길을 다녀온지 벌써 한달이 넘었다. 기대했던 만큼 이번 올레길에서도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했다. 이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지고 행복해진 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레길을 다녀온 후 현실은 쌓인 업무와 복잡한 생각의 연속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초가을 제주 올레길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다시 걷고 싶은 길
여름 휴가를 이용해 다녀온 올레길이 못내 잊혀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올레길을 찾을 것을 결심하고 달력을 보니 개천절 연휴가 눈에 띄었다. 항공권을 검색해보니 이미 10월 1일부터 3일사이는 만석. 결국 10월 2일~4일까지 일정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10월 2일~4일은 좌석의 여유가 있다.
항공권을 예매하고 이번에 걸을 코스를 더듬어본다. 여름휴가 때 걸었던 시원한 바다가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바다향기가 고스란히 올라오는 점심과 저녁식사를 하고 싶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와 바람을 맞고 싶다. 제주 올레길 8코스~10코스는 이런 나의 마음을 반영하여 이번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다.

10월 2일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역시나 전날밤 잠이 오지 않는다. 여름 휴가때도 전날밤 뒤척이다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제주로 향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뒤척이다 뒤척이다 휴대전화 알람소리에 설익은 잠을 깬다.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집을 나선다. 새로 장만한 등산복과 등산화, 배낭이 내 몸에 꼭 맞는다. 이번 올레길은 너무 편하고 즐겁게 다녀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지난 여름휴가때는 몸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예전에 구입해둔 등산복과 등산화, 배낭을 사용했는데 2박 3일 내내 힘들었다. 등산용 양말이 없어 일반 양말을 신은 발은 물집으로 만신창이가 됐고, 등산복 바지는 허리가 너무 크고, 기장이 너무 길어서 마치 아이가 어른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그나마 예전에 구입해둔 여름용 등산복 상의는 그럭저럭 좋았지만 배낭은 너무 작은데다 어깨를 꾹 눌러서 올레길을 걷는 내내 불편했다.

이제 여름휴가의 불편이 없어진 것을 생각하니 이번 올레길이 더 설레인다. 지난번 여름휴가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여 김포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이번에는 공항버스를 이용해본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다. 첫 차 시간을 확인하고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아직 새벽. 지나가는 사람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인적이 없다. 처음 생각한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니 정류장이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안내문구가 눈에 띈다. 몇 번을 오락가락하면서 찾다가 결국 휴대전화로 공항버스 정류장을 확인하다.

몇 분을 기다리니 버스 한 대가 들어온다. 버스에 탑승하려고 하니 기사님이 표를 주라고 하신다. 얼마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뒤에 계신분이 어디가세요? 하고 묻는다. 김포공항 갑니다. 그랬더니 이 차는 김포공항 가지 않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기다리니 뒤에서 말을 걸었던 분이 김포공항 가는 버스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한다. 그 제야 뒤를 돌아보니 공항버스 정류장 대기소라는 간판이 보인다. 내가 너무 빨리 도착한데다 여기저기 헤메다가 찾은 정류장이라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기소로 들어가서 표를 구입하고(7,000원) 약 10분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한다. 공항까지는 약30~40분 거리. 지하철로 이동할때보다는 훨씬 시간이 절약되고 느긋하다. 아직 잠이 덜 깬 도시를 가로지르는 버스의 창가를 바라보다 문득 잠이 들 무렵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 도착한다. 국제선 청사 다음은 국내선 청사. 천천히 짐을 챙기고 내릴 준비를 한다. 버스가 국내선 청사에 도착하고 짐을 챙겨내린다.

새벽이지만 공항은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여름휴가 때는 지하철로 이동하다보니 충분한 시간에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비행기 출발 25분전에 도착하여 숨을 헐덕이며 수속을 했다. 여유도 없었고 제주로 출발하기전 설레임을 느껴볼 시간도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무렵 탑승이 시작된다. 다시 가슴이 설레여온다.

어릴적 그 곳은
날씨가 좋다. 초가을의 햇살이 비행기 창을 통해 들어온다. 녹색이 펼쳐진 들판을 달리던 비행기가 이내 파란색 빛을 뿜어내는 바다로 들어선다. 간간히 포말이 보이고 바다의 빛깔에 넋을 잃을 쯤 제주 도착 안내방송이 나온다. 한반도에 끝에 위치한 제주는 비행기로는 40분 거리. 잠깐 눈을 감으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제주를 떠난 몇 년간 잊고 지내고 갈망하면서만 지냈다. 하지만 올해만 해도 2번째 제주를 찾는다.

바쁜 현실과 무언가 잃어가고 있는 나에게 여유를 주고 싶었고, 홀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다. 육지와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아련한 기대감이 나를 제주로 이끌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공항청사로 들어온다. 여름휴가때처럼 제주공항은 바뀐 것은 없다. 느긋하게 신제주행 버스를 확인한다. 10월 2일(일) 일정을 잡으며, 어렸을 적 다녔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올레길로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로 신제주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류장에 내려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신제주성당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렸을 적 걸었던 그 길이 맞는지 더듬어 들어갈 무렵 눈에 익은 길이 나타난다. 10분여 걸으니 신제주 성당이 나타난다. 약간 변화가 있어보이지만 그 모습 그대로다.

성당에 들어서니 아직 사람이 없다. 학생 몇몇이 미사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학생미사다보니 학생들이 왔다갔다하며 미사를 준비하고 있다. 어렸을 적 성당은 정말 넓었는데 이렇게 좁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학생미사라 활달하고 경쾌하게 미사가 진행된다.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제주성당의 보좌신부님도 활달하게 미사를 집전하신다. 미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8코스 시작점으로 발을 돌린다.

바람과 함께 걷다 - 8코스
신제주 성당에서 큰 길가로 나와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탄다. 원래 8코스의 시작점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주공항에서 서귀포로 가는 리무진버스를 타야 하나 여름휴가 때 기억하는데로 그대로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발길을 옮겼다.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표를 사니 월평마을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다고 한다. 그때서야 생각이 난다. 서귀포행 리무진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을....

이것도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 생각하고 버스표를 구입한다. 버스가 삼등삼등 제주시내를 벗어난다. 다행이 비는 내리지 않지만 약간 구름이 낀 날씨에 바람이 제법 분다. 1시간여 달렸을까? 8코스가 끼고 도는 중문관광단지가 나오자 내려야 할 곳을 찾기에 급급하다. 내가 걸어야 할 코스가 어느정도 맞다 싶을때 내렸다. 그러나 앞 뒤 물어볼 민가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쓸쓸한 길만이 쭉 뻗어있다. 정처없이 걷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어가니 귤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아주머니에게 월평마을을 물어본다. 약간만 걸어올라가면 월평마을 이정표가 나온다고 한다. 친절하게 귤도 하나 건네주신다. 귤을 하나 까먹고 월평마을을 향해 걸어간다.

약간 올라가니 월평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그때 마침 버스 한대가 들어온다. 버스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몇 분 안 걸리니 타지 말고 걸어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한참 내려가도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와서 그런지 길이 고불고불해서 그런지 8코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나는 사람도 없고 바람도 사늘하게 분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쯤 지나가던 택시 한 대가 차를 세운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월평마을 가냐고 물어본다. 월평마을 간다고 했더니, 기사님도 월평마을 가니 타라고 하신다.

해녀식당의 회덮밥

해녀식당의 회덮밥

기사님은 콜을 받아서 1시까지 사람을 태우러 가는 중이라고 하신다. 기사님도 처음 가는 길이라며 어차피 가는 길이라 태우셨다고 한다. 기사님께 기다리셔야 할 곳을 알려드리고 8코스 시작점 송이슈퍼를 둘러본다. 일단 배가 고프다. 해녀식당에 들어가 회덮밥을 시킨다.

조용하지만 넓디 넓은 해녀식당은 마을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몇 분 후 먹음직스러운 회덮밥이 나온다. 시장하던 차에 몇 분 만에 뚝딱 회덮밥을 먹어치우고 걸을 준비를 하러 송이슈퍼로 간다.

송이슈퍼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한다. 오늘은 사람들이 좀 뜸하단다. 출발하기 전 나오던 콧물이 아직도 수도물처럼 쏟아진다. 화장지와 올레빵을 사고 배낭과 등산화를 고쳐 신는다. 자! 이제 출발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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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아트 - 제주올레 6코스
남원항에서 4코스를 끝낸 후 잠시의 고민을 했다. 무엇보다 첫 날부터 23km를 걸은 것이 약간의 실수 인 것 같다. 이미 발바닥은 물집으로 만신창이가 됐고, 빨리 누울자리를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원항에서 자리를 잡을까 고민하다 내일을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쇠소깍은 유명한 관광지니 주변에 숙소가 많은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 6코스로 가자. 버스를 타고 6코스의 시작점인 쇠소깍으로 이동했다. 남원항에서 쇠소깍 까지는 버스로 30여분 거리다.

올레길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는 택시나 자전거보다 버스가 더 행복하다. 안내방송을 통해 올레길 시작점을 안내해준다. 편한이 자리에 앉아 눈은 지나가는 제주의 풍경에 고정시키고, 귀는 버스 안내방송에 둔다. 6코스 시작점 쇠소깍을 안내하는 버스안내 방송이 온다.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린다.

길을 건너니 쇠소깍으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올레길을 걷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발바닥이 아린다. 마을은 깔끔하고 단아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정표를 따라 약2~30분 들어가니 쇠소깍과 바다가 눈에 보인다.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과 씻고 자리에 누울 수 있다는 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가에 잠을 청하고
쇠소깍을 약간 보고 숙소를 찾아본다. 편의점과 카페가 눈에 띄고 오른쪽 길로 돌아서니 식당을 겸한 팬션이 눈에 들어온다. 식당을 보니 배고 고파온다. 일단 주인에게 방을 물어본다. 일부러 예약을 안 했기 때문에 퇴짜(?)는 각오했다. 주인에게 돌아온 답변은 방이 있으나 너무 넓은 방이라 비싸다는 답변, 주위에는 숙소가 없으니 서귀포시까지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가를 듣고 싶었는데 못내 아쉬움에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라 주인이 불러세운다. 단 1명을 위해 주인이 희생한다. 생각지도 못한 가격에 방을 내주겠다고 말하는 주인에게 고마움이 앞선다. 2층에 올라가 방을 보니 주인에게 더 고마워진다. 앞으로 바다가 훤히 보이고 창문을 여니 파도소리가 스테레오다. 방값을 치르고,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하는 동안은 발바닥 아픈 것은 생각나지도 않는다. 이제 어느정도 욕구가 채워질 무렵 무릅과, 발목, 발바닥이 차례로 아퍼온다.

일단 발의 온도를 내려줘야 한다. 온종일 걷기에 지치고 뜨거워진 발을 식혀주는 것은 시원한 샤워밖에 없다.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한다. 발바닥이 찌릿찌릿하다.

내일을 위해서는 물집을 처리해야 한다. 방안에서 뾰족한 것을 찾아 보았으나 마땅한 것이 없다. 설상가상 식당은 문을 닫았다. 아쉬운대로 어떤 여자손님에게 실핀 하나를 빌려 물집을 처리한다. 몽뚝한 것으로 처리하려니 고역이다. 내일은 서귀포시로 들어가니 바늘상자를 꼭 하나 챙겨야 겠다.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니 스르르 잠이 온다. 파도소리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 같다. 내일은 일찍 출발하여 코스를 마친 후 발을 오랫동안 쉬게 해줘야 겠다. 언제 잠들었는지 알지도 못한채 잠이 들었다.

알람소리와 파도소리에 잠이 깨니 6시다. 발바닥이 따끔따끔하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세면을 한다. 잠깐 밖에 나가보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오늘은 좋은 날씨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아직 모두가 자고 있는 시간. 6코스를 향해 출발한다.

파도가 길동무를 해주고
4코스 내내 따라오던 바닷가는 6코스 내내 길동무가 되어 준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소금막을 지난다. 제주도도 바다가 있고 햇살이 좋았으니 소금이 나오는 건 당연지사. 소금막을 지나자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은 바다를 옆에 두고 구불구불 이어진다. 오름은 바다를 가까이하고 포구와 포구를 연이어 지난다. 제지기오름을 지나자 보목포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른 아침이라 포구는 조용하고 흐린날씨와 조금씩 내리는 비에 을씨년스럽기 까지 하다.


6코스의 특징은 산길을 걷더라도 바로 아래가 바다라는 것이다. 등산을 하는 듯하지만 귀로는 깊은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오름을 오르지만 앞에는 바다가 펼쳐저 있고, 포구를 섬등섬등 지나는 길이 천천히 천천히 서귀포시내로 향해간다.

한참 포구를 지날 쯤 현대적인 건물이 나타나 순간 당황스럽다. 보목하수처리장이다. 보목하수처리장을 나와 검은여를 지나면 서귀포 칼 호텔 뒷길로 들어서고, 이제 본격적으로 서귀포시로 들어선다. 한참 동안 들리던 파도소리가 약간 멀리 바다로 보이기 시작하고, 인도와 아스팔트길이 시작된다.

제주올레 사무국으로 들어가기 전 귀여운 볼거리가 기다린다. 소정방폭포다. 제주올레사무국 바로 아래 위치해 있는 소정방폭포는 정방폭포처럼 바다로 바로 이어지는 폭포지만 정방폭포보다 규모가 작다. 오히려 시냇물 같지만 깊은 파도소리와 어우려저 웅장해진다. 소정방폭포에서 한참동안 폭포를 즐기고 제주올레사무국으로 들어선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은 사무실이 조용하다. 잠깐 쉬었다가 정방폭포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정방폭포는 제주에 살 때 많이 와 본 곳이다. 여전히 폭포는 웅장하고 파도는 잔잔했다. 정방폭포를 구경하고 본격적으로 서귀포시내로 들어선다. 처음 서귀포시내로 들어섰을때 한참을 걸어가다보니 길을 잃었다. 표시를 잃어버린 것이다. 물어물어 서귀포초등학교를 찾았다. 서귀포초등학교를 찾고 나니 이중섭 미술관 찾기는 쉬워진다. 이중섭 미술관쪽으로 들어서니 이중섭이 제주에 거주했을때 묵었던 숙소가 나온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이 정겹다. 숙소에 들러 잠깐 둘러본 다음 미술관으로 들어선다.

미술관은 2층으로 되어있다. 1층은 이중섭의 작품과 일본인 아내가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잠깐 시간을 두고 편지를 읽어보면 일본인 아내의 이중섭에 대한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다. 이중섭 미술관을 나와 한참동안 서귀포시내를 걷는다. 시내는 단아하게 정리되어 있고 시내를 빠져나와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 천지연폭포로 가는 길이다.

이내 서귀포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천지연기정길을 통해 맑은 공기를 마시고, 폭포 가까운쪽으로 나와 칠십리시공원으로 가기전에 점심을 해결한다. 천지연폭포 입구에는 편의점이 있어 간단한 점심식사와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다. 삼각김밥과 음료수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 바늘상자를 하나 구입했다. 1시간여 쉬었을까 이제 칠십리시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칠십리시공원으로 발길을 옮기면 설마설마 저 고불고불한 길을 올라가는 것은 아니겠지 하였지만 역시나 고불고불 서귀포항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선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기 시작한다. 오르막진 이 길을 언제 올라가나 하는 마음이 들고 햇볕이 갑자기 내리쬐기 시작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몇 시간이라도 좋으니 천천히 올라간다. 옆으로 서귀포항이 내려다보이고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올라갔을때 시공원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시공원을 벗어나면 외돌개로 향하게 되고 6코스의 종점이 다가온다. 시공원으로 들어서 바람과 조용한 새소리를 들으면 한참을 걷다가 정자를 만난다. 그리고 앞에 펼쳐진 풍경에 잠시 넋을 놓는다. 저멀리 하지만 눈에 보일만큼 천지연폭포가 보인다. 천지연폭포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폭포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니. 폭포와 폭포주위에 원시림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이자리를 위해 시공원으로 안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어딘지 모를 감격이 밀려온다.

천지연폭포를 감상하고 시공원을 나서니 외돌개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길은 조용했고, 걷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길을 따라 외돌개쪽으로 접어드니 삼매봉이 나타난다. 그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아담한 길이 이어지고 왼쪽으로 문섬과 범섬이 눈에 들어온다.

삼매봉은 아담하면서도 길도 정리를 잘 해놓아 편안하게 오르기에 좋다. 무엇보다도 길을 걷다가 왼쪽을 보면 바다를 볼 수 있고 오른쪽은 제주 내륙의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바람소리와 맑은 공기에 취해 한참을 걷다보면 외돌개쪽으로 난 작은 산길이 보인다. 아주 작은 산길이라 모르고 지나치면 삼매봉을 한바퀴 돌게 된다. 그 작은 산길로 들어서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10분정도 내려가면 외돌개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6코스의 종점인 것이다.

한순간의 감격이 밀려오고 또 한순간의 아쉬움이 밀려온다. 구비구비 바다소리와 함께 한 6코스가 외돌개의 거친파도와 함께 끝나면서 감격이 밀려오고, 또 나의 제주올레길 여행도 어느정도 마무리 되어 가는 것에 아쉬움이 밀려온다.

18코스 잠깐 맛보기
18코스는 사라봉이 들어있어 한번 가보고 싶었다. 어린시절을 사라봉 밑에서 보냈기 때문에 올레길 코스에 들어있는 것만으로도 설레였다. 하지만 신촌농로에서 끝낼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표지가 잘 안되어 있어 한참동안 헤매었고, 이틀동안 38km를 걸은 덕분에 왼쪽 무릎과 오른쪽 발목이 정상이 아니었다. 더 걸을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신촌리로 나와 버스를 타고 동문로터리쪽으로 향했다.

동문시장 구경과 보성시장 감초식당
동문시장은 동문로터리에 위치해있다. 얼마전 SBS 런닝맨에서 동문시장에서 촬영을 한 적이 있다. 제주시내에 있는 큰 시장중 하나이며 제주에서 생산되는 해물과 여러가지 물품들을 판매한다. 동문시장에서 택시로 약 10분정도 가면 제주시청 근처 보성시장을 만날 수 있다. 보성시장은 허형만의 식객에서 소개된 감초식당이 있는 곳이다. 감초식당은 보성시장이라고 써진 건물안으로 들어서면 찾을 수 있다. 8,000원짜리 순대국밥 맛이 일품이다.


순대국밥을 한 그릇 뚝딱하고 공영버스 1번을 타면 절물자연휴양림으로 갈 수 있다. 공영버스 1번은 자주 오지 않으므로 절물자연휴양림 홈페이지에서 공영버스 1번 운행시간을 꼭 확인해야 한다. 제주시청에서 1번을 타고 약40분 정도 가면 절물자연휴양림에 도착한다. 입장료는 1000원이다. 자연휴양림에 들어서면 삼나무 향기에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빽빽하게 들어선 삼나무와 새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장생의 숲길은 장장 3시간 20여분이 걸리는 코스로 부드러운 삼나무 가지를 밟고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매주 월요일에는 출입이 통제되니 그외 요일에 방문하면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다시 못 올것처럼 그렇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절물자연휴양림을 방문하고 이제 천천히 제주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비행기시간은 넉넉하지만 이틀 동안 무리한 덕분에 오른쪽 발목과 왼쪽 무릎은 계속적인 통증을 주고 있다. 서서히 그동안 걸었던 길을 음미하며 제주공항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제주를 떠날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웬지 이번에 가면 다시 못 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어떤 인연을 통해서든 다시 제주를 방문한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하지만 나는 제주를 다시 방문할 것이다. 어린시절 아무 걱정없이 지내던 그때의 나를 다시 찾기 위해서, 그리고 삶에 지칠때 다시 제주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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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 제주 올레길

2011/08/21 21:45
두려움과 설레임의 교차
제주 올레길을 가려고 마음 먹으면서 어딘지 모를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하였다. 혼자 떠나는 두려움과 올레길을 가는 설레임이 교차하며 묘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 일단, 항공권을 예약하고 떠날 채비를 한다.
에게 제주는 조금 특별한 그리움이다. 초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제주에서 보냈고, 그래서 제주는 나에게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제주에 간다는 것은 오랫동안 못 만났던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 듯 애뜻한 설레임과 두려움이 함께 교차하는 그런 것이다.

떠나자! 그리고 만나자!
사실 어딘지 모르는 두려움과 설레임에 숙박할 곳도 예약 못했고, 떠나기 전날까지 과연 내가 떠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계속 항공권 예약 부분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혼자 차근차근 제주에 대한 공부를 해나가고 있었다. 주강현 선생의 제주기행을 읽으며,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제주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났고, 제주 올레길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며, 어떤 코스가 좋을듯 가늠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일! 잠이 오지 않는다. 자는 둥 깨는 둥 밤을 보내고, 새벽 4시에 잠을 깼다. 주섬주섬 짐을 싸고, 떠날 채비를 한다. 떠나자! 그리고 만나자! 이렇게 시작하자! 하며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을 나섰다.

제주, 그리움 속으로!
넉넉하게 집을 나섰다고 생각했는데,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도착하니 아슬아슬 해진다. 마음이 갑자기 급해진다. 공항철도를 타고 도착하자 마자 공항으로 뛴다. 출발 20분전에 도착하여 수속을 시작한다. 숨은 헐떡이지만 떠난다는 설레임이 더 즐겁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탄다. 한참 숨을 헐떡이다 이내 잠이 온다. 스르르 잠이 오고, 기내 서비스 소리에 잠이 깬다. 오렌지 쥬스 한 잔을 마시고, 작은 창으로 밖을 바라본다. 날씨가 좋지 않아 하얀 구름만 보인다. 얼마전 제주행 비행기를 탔을 때 창 밖으로 보이던 육지의 가옥들과 바다, 점점이 떠 있던 섬들이 보고 싶지만 역시나 구름이 가득 낀 날씨 덕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제발 제주는 날씨가 좋기를 바래본다.

구름속을 한참 날라 이윽고 착륙 안내 방송이 나온다. 가슴이 더 떨려온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자 마자 제주의 날씨를 살핀다. 햇빛이 살짝이 비치는데 비가 후두둑 내린다. 웬 여우비야. 가방을 챙겨 제주땅에 발을 디딘다. 갑자기 마음이 즐거워진다.

공항에 내려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100번 버스를 타고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간다. 버스를 타고 제주시내로 들어서니 어렸을때 보았던 거리가 많이 바꼈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제주시외버스터미널을 물어본다.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같이 내리면 된다고 얘기 해준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표선행 버스표를 끊는다. 터미널 매점에서 0.5리터 얼음물을 하나 산다. 수건에 돌돌 싸서 가방에 넣고 버스를 기다린다. 여우비가 내리던 하늘은 이내 햇살을 쏟아낸다. 쏟아지는 햇살이 약간 따갑다.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빠른 속도도 아니고 삼등삼등 시내를 빠져 나간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는 버스가 웬지 정겹다.

나는 너무 빠른곳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처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속도로 살고 싶은데, 내 마음이 빠른 것인지, 주위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인지 마음속에는 조금 느린 속도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너무나 급하게 마음먹고 급하게 살려고 한 것 같다. 표선행 시외버스처럼 느리게 그렇지만 삼등삼등 털털 거리는 마음처럼 살고 싶다. 버스가 표선 해수욕장에 도착하고, 가방을 챙겨 내린다.

해수욕장쪽으로 발을 옮기니 올레 안내소가 나온다. 안내소에 들러 올레 패스포트를 하나 샀다. 올레 안내소를 지키는 삼춘(제주에서는 모르는 사람도 삼춘이라고 부른다)의 올레길 설명이 이어진다. 올레길에 대한 사랑과 제주에 대한 사랑이 듬뿍 느껴진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 같다. 1시간여 설명을 듣고 이제 길을 나선다.

제주 올레길 4코스(표선해수욕장 - 남원항, 23km)
올레길 안내표식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떠나기 전 올레길 관련 자료를 읽으며, 4코스를 선택한 이유는 바닷가를 옆에 두는 길과 오름을 경유 하는 길이 균형적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바닷길이 이내 확 트인다. 날씨는 구름이 조금씩 차고 햇살은 그리 따갑지도 않다. 파도가 섬 안쪽으로 밀어 닥치며 바다 안개도 함께 밀려온다. 오랜만에 듣는 파도소리가 정겹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닷가에 눈을 두고 다시 걷고를 반복 한다.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파도소리가 그리웠던가, 얼마나 제주의 바다가 그리웠던가. 발걸음을 재촉하며 눈은 바닷가쪽을 떠나지 못한다. 길은 일부러 도로를 향하지 않고 바다를 향해간다. 딱딱한 도로길이 있더라도 돌맹이가 있는 바닷길로 안내를 한다. 얼마전 불어닥친 태풍에 바닷가에는 여러 부유물들이 보이지만 파도소리만으로도 즐겁다. 길을 재촉하다 너무 좋은 바닷가가 나오면 앉았다 걷다를 반복한다.

제주의 바다가 나 같은 여행객에게는 아름답고 보고 싶은 바다일지 모르지만 제주 사람들에게는 좋지도 싫지도 않는 그런 바다 일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바다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다. 바다 때문에 가족을 잃어버리고 또 자신의 삶과 시간을 모두 바다에 투자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주의 바다 소리는 슬픈 소리도 담고 있다.

4코스는 조용하다. 아무래도 휴가가 끝나서 그런지 코스를 걷는 사람도 별로 없다. 안내소 삼춘의 말처럼 길을 걸으며 생각하고 자신의 고민 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길 인 것 같다. 올레길 표식과 올레길 안내책자를 읽으며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지 확인한다. 가끔씩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과 눈 인사를 한다. 제주사람들도 반갑게 인사해준다. 그것 만으로도 아무도 모르는 다른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걷는 다는것, 그리고 혼자 걷는 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지 처음 느껴보는 것 같다. 20km를 넘는 머나먼 길이지만 혼자 걷는다는 것은 고독하지만 자꾸 마음 속 안에 있는 생각들을 꺼내는 것 같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다 간세를 만난다. 어디 까지 온 건가 확인하며 안내책자에 적힌 글을 읽어본다.

안내책자를 읽으며 제주 올레길에 대해 생각한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서로 눈 인사를 건네고 반갑게 인사하고, 걸어 만나는 곳마다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제주 올레길은 사람을 만나는 길, 사람의 길이다. 길을 걸으며 제주 사람을 만나고 제주 이야기를 만나는 것이다. 그냥 길을 걷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독한 일이 겠는가?

하지만 길을 걸으며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느낄 수 있는 길은 제주 올레길 밖에 없는 것 같다. 제주 올레길이 말하는 속살을 걷는다는 것이 이런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제주에 관광을 하러 온다. 그리고 관광지를 보러 온다. 알려진 관광지와 멋진 풍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오히려 관광지니까 하며 스쳐 지나갈지 모른다. 이렇게 속살을 보지 못하고 제주의 겉만 보고 가는 것이다. 제주 사람의 이야기, 제주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관광지만 보고가는 것이 과연 제주를 제대로 아는 것일까?

우리의 삶처럼 관광도 그렇게 빨리 빨리 보고 가는, 빨리 빨리 쉬었다 가는 것으로 어느새 변해있다.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만나는 길에 서서 서서히 자신과 이곳을 음미하는 그것은 이미 너무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다행이도 요즘은 많은 길들이 생겨나고 있다. 나에게는 참으로 기쁜 일이다. 제주 올레길에 오기 전에도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왔다. 비록 파도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숲속의 맑은 공기와 내내 들리는 강물 소리가 퍽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처음 제주 올레길 여행을 생각하며, 혼자 떠날 생각을 한 것은 나를 찾고 싶어서였다. 사람은 사는 곳을 떠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변한다. 변한다는 것이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항상 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가끔씩 어렸을 적 내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처음 일을 시작했던 내가 그리워 질 때가 있다. 그 시절에는 약간의 여유는 지니고 살았던 것 같다.

가끔씩 지칠때면 속도조절을 외치지만 다시 일어서면 빠른 것들에 이미 길들여져 빨리 빨리가 된다. 나 자신에게도 빨리 빨리를 강요하고 마음처럼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에 내 자신을 질책한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속도조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내 감성의 탯자리 같은 제주를 생각했다.

제주. 나에게는 내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감성의 탯자리다. 어디를 가든 숲이 있고 지천에 놀거리가 가득했던 그곳에서 아무 걱정 없는 여유로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비록 넉넉한 집안 형편은 아니었지만 제주사람과 제주만으로도 행복하고 여유롭게 살았던 것 같다. 가끔씩 지칠때면 넉넉하지도 않았는데 여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그런 답이 쉽게 나올리 없지만 욕심이 없었을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요즘같은 시대엔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는 일인가. 제주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냥 제주에 살고 싶어 내려온 사람들이 많이 있다. 직장과 아는 사람들을 서울에 두고 제주에 와서 제주의 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 사람들이 부럽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용기가 가상하고, 일정 정도 자신의 욕심을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안 올레길은 계속 바닷가로 나를 안내한다. 바람도 선선하고 길을 걸으며 만나는 마을들은 조용하게 그리고 그윽이 나를 맞이한다. 한참을 포구와 마을을 걸었을까? 중간 기착지 정도 되는 남쪽나라 횟집이 보인다.


밥을 먹고 갈까? 남쪽나라 횟집에 들어선다. 횟집안은 조용하다. 한쪽 식탁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본다. 의외로 가격이 싸다. 회덥밥을 시키니 삶은 호박과 부침개 등 찬거리가 같이 나온다. 만원의 행복이다. 이것저것 맛을 음미하며 다음 갈길을 준비한다.

이제부터는 바닷가길이 끝나고 오랫동안 산길이 이어진다. 오름 하나를 넘으면 계속 산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남원항에는 5시~6시에나 도착할 것 같다. 밥을 뚝딱 해치우고 바다를 보며 쉬었다가 길을 재촉한다.

횟집을 나와 길을 따라가니 도로가 나오고 횡단보도를 건너니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길을 걷는 주위에는 감귤나무들이 지천이다. 아차! 가을에 왔으면 노란색으로 익은 감귤로 장관을 이루었을 듯 하다. 아직 익지 않는 녹색감귤들이 땡감처럼 나무에 달려있다. 감귤밭과 창고를 지나는 길은 조용히 조용히 오름으로 안내한다. 길은 감귤밭과 삼나무를 계속 보여주고 바람은 세찬듯 부드러운듯 불어온다. 산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니 햇볕이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조용한 길이다. 바람소리, 새소리만 들릴 뿐이다. 파도소리와는 또 다른 소리다. 소리에 취해 길을 재촉하니 망오름 입구가 길게 보인다. 파도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만 듣고 평탄한 길만 걷다가 계단이 쭉 나 있는 길을 보니 덜컥 겁이 난다. 입구에서 다리를 풀어주고, 허리도 풀어주고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망오름 입구는 그렇게 가파르진 않다. 하지만 계단으로 되어 있어 순간 겁에 질리게 한다. 계단에는 걷기에 대한 아름다운 문구들이 여행자를 반긴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 베르나르 올리비에 -
걸어라. 아무대 대신해서 걸어주지 않는다. 살아라 인생의 길 역시 아무도 대신해서 살아주지 않는다.
- 신정일 -
내가 이 길에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걷기"를 통해 깊게 숨겨져 있던 자신의 내면을 꺼내고 마주본다. 어떤 이는 여행에 대해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도 했다. 나는 걷기를 통해 나의 내면을 꺼내어 만난다.

계단이 끝나고 자그마한 산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망오름 정상이 보인다. 망오름은 예전에 봉수대가 있던 자리이다. 하지만 풀만 우겨져 있지 봉수대로 여길 수 있는 돌무더기는 보이지 않는다. 망오름 정상을 약간 벗어나자 확트인 제주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 다리를 쉰다. 제주에는 이런 오름들이 많다. 오름은 고대에는 통신의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현대에는 주변 주민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

화산으로 이루어진 제주는 자그마한 오름만 올라도 주위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주위에 확트인 공간을 볼 수 있는 오름이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주는 살만 한 곳이다. 현대를 살고 있는 내가 살만한 곳으로 꼽고 있는 제주를 조선시대 사람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인식했다. 뿐만 아니라 제주 사람들도 관리들의 폭정에 제주를 떠나고 또는 바닷일로 목숨을 잃었다. 아직도 제주 사람들은 제주를 답답한 공간, 섬으로 인식한다.

망오름 계단에 설치된 걷기 명언

걷기 관련 명언(신정일)

망오름으로 올라가는 계단길

망오름으로 올라가는 계단길

걷기 관련 명언

걷기 관련 명언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광을 매일 보고 사니 너무 좋겠다고 하면 이내 답답하쟎아요! 육지가 더 좋죠라는 말이 돌아온다. 어쩌면 관리들의 폭정에 눈물을 머금고 일본으로 전라도로 떠났던 제주사람들, 그리고 그럼에도 제주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그 사람들의 DNA가 아직도 제주 사람들에게 이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망오름 정상 부근에서 잠시 쉬었다. 길을 재촉한다. 망오름을 내려오니 감귤농장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시멘트 길이지만 삼나무 가지가 깔려있어 군데군데 폭신폭신한 느낌이 든다. 가을에 노란색으로 감귤이 익으면 노란천지가 된 길이 아름답겠다. 땡감 같은 감귤이 지루할 때쯤 다시 길은 바다로 안내한다. 태흥리 포구를 너무 이제 남원항쪽으로 접어드는 길이다.

오후가 되자 날씨는 개어 햇볕이 내리쬔다. 오후 햇살이 따갑다. 태흥리 길은 약간 따가운 햇살과 함께 지루하리만치 도로길을 따라간다. 아마도 23km나 되는 길이라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바다를 끼고 가는 길이라 바다소리에 귀 기울이며 걸으면 지루함도 함께 사라지리라. 지쳐 갈 때쯤 조용한 남원항이 모습을 보인다. 해는 이미 기울어 남원항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넘실된다.

* 4코스(표선해수욕장~남원항)는 제일 긴 코스이다. 간단한 간식과 물을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 제주시에서 표선해수욕장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표선행 버스표를 구입하면 된다.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버스비는 3,000원이다.
* 시외버스티미널 매점에서 0.5리터 얼음물을 살 수 있다. 관광지에 가면 1,000원이지만 5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구입한 얼음물을 수건에 돌돌 말아 배낭에 넣어두면 두고두고 마실 수 있다.
* 제주에서는 시내, 시외버스에서 모두 티머니카드가 사용가능 하다. 티머니 카드를 충분히 충전해 가는 것이 좋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가는 버스의 시간표를 볼 수 있다. 대부분 30~40분 거리이므로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또한 버스로 이동하면 자신이 걸어서 이동했던 길을 다시 되새김 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 4코스 입구에는 올레길 안내소가 있다. 안내소에서는 올레 패스포트 구입이 가능하며, 패스포트를 구입하면 제주올레 가이드북이 함께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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