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당한 사람의 가족은 모든걸 다 잃게 됩니다. 우린 그들의 마음에 증오와 불신과 야만적인 폭력성을 심어 줄 것입니다. 무섭고 끔찍한 일이죠. 증오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됩니다. 피를 본 인간은 더 많은 피를 원하게 됩니다. 사형수의 죽음에 우리가 차갑게 등을 돌릴 때 우리 사회는 결국 자신의 무덤을 파는 무서운 재앙에 직면할 겁니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사형' 을 실시하고 있다. 많은 인권단체에서 사형은 비인간적인 형이므로 폐지를 외치고 있지만 아직까지 폐지되지 않고 있다.
2003년 1월 18일부터 19일까지 1박 2일간 순천, 여수지역으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답사는 저희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일본인 친구의 부탁으로 1월초부터 계획하였습니다.
원래는 여수지역에 초분(애빈이라고도 합니다. 시체를 땅 속에 곧 매장하지 않고 일정 기간 지상에 두었다가 육탈된 뼈만을 추려 매장하는 복장제(複葬制)입니다)이 남아있다고 해서 초분을 보기 위해 답사를 계획했습니다. 더불어서 임진왜란에 관련된 유적들이 순천, 여수지역에 다수 존재하므로 관련유적들을 중심으로 답사코스를 계획했습니다. 자가용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답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1박 2일간의 답사가 유쾌했던것 같습니다.
[1일째:광주→여수]
광주광천동버스터미널에서 만나 여수로 이동하였습니다. 약 2시간정도 소요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1시간 30분정도 걸렸습니다. 우선 우리가 계획한 코스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여수시 화양면 이목리의 초분을 보러가기로 하였습니다.(확실하게 이곳에 초분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몇해전에 조사를 통해 초분이 존재한다는 보고만을 가지고 이목리로 향했습니다.) 교통편을 알아보니 1시간에 1대씩 버스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수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기다리기를 1시간...(여수는 특이한 버스노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점과 종점이 일치합니다. 그래서 윗길, 아랫길로 버스에 표시를 했는데 처음에 도착해서는 무지 헛갈리더군요)
이러다가 아무것도 못 보겠다 싶어 우선 여수시내에 있는 진남관과 타루비, 거북선등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진남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어느 버스를 타도 진남관으로 가더군요. 진남관에 도착하여 우선 임진왜란유물전시관을 관람하였습니다. 일본인 친구들이 한국어를 하기때문에 한국어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때 구세주(?)가 나타났지요. 사실 아무리 한국어를 안다고 해도 일본어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못하지요. 거기에 계시던 문화유산 해설사님이 일본어를 잘 하시더군요. 제가 일본어를 못해서 설명해주지 못하는 부분까지 깡그리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게다가 거북선의 위치와 초분에 대해서 여쭤볼 수도 있었습니다. 초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전화를 하셔서 어디에 있다고 알려주시기까지 하더군요. 참 고마웠습니다.
진남관을 나와 근처에 있는 타루비와 좌수영대첩비로 향했습니다. 98년에 답사 온 기억을 살려 열심히 찾아들어갔지요. 골목을 거쳐 타루비와 좌수영대첩비가 위치한 산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문이 굳게 잠겨있는데다, 보안시스템이 되어 있어서 담도 못 넘겠더군요. 보일듯 말듯한 담장 너머로 보호각에 들어있는 타루비와 좌수영대첩비를 구경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거북선을 보러 이동했습니다. 버스정류장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거북선을 보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물러보았습니다. 또 여수에서 가장 큰 시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물어보았지요.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더군요. 버스를 타고 20~30분후에 거북선에 도착하여 거북선을 관람하였습니다.(아주 자세한 설명과 마네킹을 이용해서 거북선의 내부를 잘 재현했더군요.)
거북선을 보고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이때 제가 농담으로 "우리 걸어서 진남관까지 갈까요" 그랬지요. 일본인 친구들이 웃더군요. 하지만 진짜로 걸어서 진남관까지 갔습니다.ㅡㅡ;;;
정말로 그럴려고 그런것이 아니라 걷다보디 수산시장이 보여서 수산시장에서 회도 사먹고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여수에서 가장 큰 시장까지 걸어서 구경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녁 6시쯤 되서 숙박지를 잡을려고 이리저리 걷다보니 어느순간 진남관앞까지 왔더군요. 그래서 진남관앞에 숙박지를 잡고 약간 쉬었다가 근처 시가지에서 저녁도 먹고 카페에서 차도 마셨습니다.
돌아오는 도중 낮에 길을 물어봤던 구멍가게에 다시 들려 이목리 들어가는 버스편을 알아봤습니다. 역시 친철하게 버스회사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시더군요.
[여수→순천]
진남관 앞에서 하루밤 숙박 후 화양면 이목리에 들어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차시간에 맞춰 버스정류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런일이...
버스회사에서 가르쳐 준 버스번호가 틀렸더군요. 그래서 약 30분정도를 더 기다렸다가 이목리로 들어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약 30분정도 달려 이목리에 도착했습니다. 이목리는 바다와 바로 접해있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우선 구멍가게에 들어가 이장님댁을 여쭤봤습니다.(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답사를 다니거나 누구집을 찾을때는 구멍가게가 최고지요. ㅋㅋㅋㅋ)
리사무소에 가면 이장님을 만나뵐 수 있다고 하길래 리사무소로 향했습니다. 리사무소에 도착하니 어르신 한분이 서 계시더군요. 저희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이장님을 뵐 수 있냐고 여쭤봤더니 그 어르신이 안내를 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을 따라서 초분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처음에 '초분' 이라고 하니 뭔지 모르시더군요. 그래서 설명을 드리니, 여기서는 '애빈' 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애빈을 미신이라고 믿기 때문에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애빈은 보통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만드는데 송장 썩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마을과 떨어진 곳에 만든다고 합니다. 애빈은 출상날 바로 만드는데 땅을 고르게 하고 돌을 깔아서 평평하게 만들고 송장을 싼 후 짚단을 초가집 올리듯 덮어놓습니다. 그 위에 줄을 맨 무거운 돌을 달아서 짚단이 바람에 날라가지 못하게 하고, 들짐승들이 파헤치지 못하게 합니다. 요즘은 거의 애빈을 하지 않는데 이목리에도 1~2개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보통 1~2년후에 뼈만 추려서 손 없는날 땅에 매장하는데 꼭 1~2년후가 아니더라도 자손들이 하고 싶을때에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본 애빈은 할머니의 애빈이었는데, 5년전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애빈을 답사한 후 마을에서 조금 걸어나와 버스를 탔습니다. 시내에 많이 떨어진 곳이라서 정류장이 아니라도 손만 흔들면 세워주더군요.
여수 시내로 나와 점심을 먹고 흥국사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여기서 또 실수를 하였지요. 기점과 종점이 똑같은 여수의 버스 노선에 착각하여 버스를 탔더니 다시 우리가 버스에 탔던 여수시외버스터미널로 오더군요. 그래도 기사님이 친절하게 버스비를 다시 되돌려주셨습니다.
몇 분더 기다려 버스를 타고 흥국사로 들어갔습니다. 흥국사도 약 30분가량 걸리더군요. 흥국사는 한창 공사중이었습니다. 요즘 많은 사찰들이 휘황찬란하게 사찰을 꾸미고 있다는데 참 안타까운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흥국사에서도 문화유산해설사님들이 설명을 해주셨는데, 일본어를 못하셔서 제가 통역(?)을 했지요. 그런데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많이 아시네요?" "역사학과인데요" "아! 그러세요?"
그러시더니 이후에는 아예 저에게 설명을 미루시더군요.....ㅡㅡ;;;;;
그래도 해당하는 지역에서는 그 곳에 있는 문화유산해설사님들의 설명이 더 좋은데...ㅎㅎ 어찌됐든 흥국사 답사를 끝내고 부랴부랴 여수시내로 나왔습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순천까지는 버스가 자주 있었습니다. 여수에서 순천까지는 약50분 걸리더군요. 버스에서 오랜만에(?) 쉬면서 잠도 조금 자면서 순천에 도착하였습니다. 순천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습니다.
또 길을 물어 순천 왜성이 있는 신성리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신성리도 외지라서 버스가 1시간에 1대 있었습니다. 하지만 늦게까지 버스가 있어서 우선 신성리로 들어갔습니다. 신성리로 들어가는데 약 30분 가량 걸렸습니다.
전에 답사를 왔었기 때문에 왜성은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이정표도 잘 되어 있고 산위에 성이 있어서 잘 보입니다) 근처 구멍가게에서 신성리에서 순천시내로 나가는 버스편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버스는 7시에 있다고 했습니다. 헉.....ㅡㅡ;;; 2시간을 뭐하지...?
어찌됐든 걱정을 뒤로 하고 신성리 왜성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서는 저의 설명이 필요없었습니다.
일본인 친구들이 더 잘 알테니까요..ㅋㅋㅋ
함께 답사간 일본인 친구중에는 우리 학교에서 고고학 석사과정 중인 분도 계셨습니다.(사실 저보다 나이가 많은데 그냥 친구들이라고 했습니다.ㅎㅎ) 그 분에게 제가 궁금한 것을 여러가지 물어봤지요. 순천 왜성은 일본성에 나타나는 특이한 구조들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관리가 소홀하여 성벽 곳곳에 나무가 자라고 있어 그대로 두면 붕괴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약 40분가량 순천 왜성을 둘러본 후 마을로 내려와 다시 버스편을 확인해봤습니다. 역시나 똑같은 답변을 듣고 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해가 지니 주위가 어둑어둑해지고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계속 있을수도 없고 해서 우선 해룡면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ㅋㅋㅋ 무대포지요? 제가 그러자고 한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답사를 추진한 일본인 스즈키상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끼 마쇼" 그러더군요..ㅎㅎ *이끼 마쇼! 는 한국말로 갑시다! 입니다)
그래서 아무 대책없이 터덜터덜 약 30분가량 걸었습니다. 가다가 쉬기도 하구요. 외지나서 지나가는 차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농담으로 "가다가 다리 아프면 히치하이킹을 하자" 고 했더니 일본인 친구들이 웃더군요. 그런데 진짜로 히치하이킹을 했습니다.
도로변을 지나고 있는데 마침 봉고차가 나오더군요. 그래서 제가 용감하게 손을 들었지요. ^^ 고마운 아저씨께서 저희들을 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태워주시고 달력도 하나씩 주셨습니다.
이렇게 좌충우돌 무대포 1박 2일간의 답사가 끝났습니다.
저희는 순천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각각 광주, 목포행 버스를 타고 헤어졌습니다. 1박 2일간 정말로 답사다운 답사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얼마만에 찾아가는 것일까?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인다. 요 근래 눈이 내려 찡찡했던 하늘이 겨울의 시린 파란색을 보여준다. 벌써부터 봄이 가까웠을까? 바다쪽으로 간다고 두껍게 걸치고 나왔더니..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광주에서도 승용자로 2시간 거리...
육지와 다리로 이어져 섬이 아닌 섬 진도로 간다.
물살이 너무 세서 교각을 세우지 못하고 해남과 진도사이에 교각을 세워 다리를 만들었다는 진도대교를 걸어서 건넌다. 집어삼킬 듯이 소용돌이 치는 파도가 다리를 흔든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 해남군에서 진도군이 된다. 날짜변경선을 넘어서면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어제가 되면서, 묘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나도 해남군과 진도군의 경계에 서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역사적인 장소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수난과 질곡의 역사 덕분인지 우리는 '경계' 에 너무 익숙하다. 분단이라는 현실 때문일까? 같은 하늘아래 있으면서 섬 처럼 건널 수 없는 다리를 만들어 서로의 섬이 되버린 현실.
우리는 나눠진 시간만큼 다른 문화를 만들어 왔다. 고의는 아니지만 진도도 나눠져 있는 시간 동안 다른 문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진도의 문화가 우리에게 감동과 신비함을 주는 이유는 분명 다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섬은 피난처를 제공하는 공간이었으며, 더이상 갈 수 없는 그 끝까지 다다랐을 때 비로소 들어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남도의 섬들은 많은 유배자들의 족적이 남았으며, 세상풍파에 시달려 닳고 닳은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있는 곳이다.
섬은 열려진 고립이다.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덧처럼 더욱더 옥죄이는 것이 섬이었다. '진도'의 한자어를 풀면 보배로운 섬이다. 진도가 보배로운 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열려진 고립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번 들어온 문화는 섬사람들의 의해 생동감 있게 펼쳐졌고, 그것이 곧 문화가 되었다. '진도' 가 아름다운 까닭은 바로 이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