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다녀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랜만에 찾은 해남이지만 모든 것이 새롭게 만난것처럼 반가웠다.
일주일전의 기억을 살려 땅끝 마을 해남 답사기를 시작한다.
그동안 너무도 조용하게 살아와서 그런지, 해남답사를 준비하는 나는 굉장히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떨리기까지 했다. 이번 답사는 오손도손하게 해남길을 걸으며,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11월 22일 토요일 오후, 광천동 버스터미널에서 향숙 누나를 만나 가볍게 요기를 하고,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산 후 필구형의 차를 타고 해남으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의 햇빛은 해남으로 향하는 차의 창가를 비추며, 분주하게 우리를 따라왔다.
광목간 도로를 타고 광주시내를 벗어나 나주로 향하니 주위에 서 있던 건물들이 낮아지며 조금씩 들판이 시작된다.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이지만 오늘따라 시원해 보인다. 광목간 도로에서 나주시내쪽으로 핸들을 돌려 들어간다. 영암을 거쳐 강진, 해남쪽으로 난 새로운 도로를 타기 위해서다. 아침 일찍 이 도로를 타면 멀리 아스라하게 구름에 쌓인 월출산을 보며 달릴 수 있고, 오후쯤에 도로를 타면 노을에 빨갛게 물든 월출산을 보며 달릴 수 있다. 쭉 뻗은 도로에서 모든 들판을 제압하고 우뚝 서 있는 기암절벽들이 예술이다.
열심히 도로를 달려 1시간 30분쯤 됐을까? 해남이 다왔음을 알리는 팻말이 우리를 반긴다. 해남 팻말이 보이는 도로를 타고 가기를 20분여 해남군청에 차를 세우고, 다른 일행들을 기다린다. 해남군청에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소나무는 을묘왜변때 해남의 현감이었던 변협이 심은 것으로 인근고을들이 을묘왜변때 성을 못 지켰던 반면, 해남은 왜적에 맞서 성을 지켰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소나무다. 그래서 소나무의 이름도 守城松(수성송)이다. 그때 심은 소나무가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폭의 그림처럼 기울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멋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도착했다는 연락이 온다. 기분이 좋아 달려가다 길중간에서 서로를 얼싸 안았다. 얼굴은 아무도 안 변했지만, 마치 어디 변한곳이 없는가? 두리번 거리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웃기에 바쁘다. 군청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요기를 하고 숙소로 향한다. 이미 해는 졌지만, 밤이 시작됐지만 해남의 밤은 더욱더 칠흑같다.
밤을 뚫고 15분쯤 달렸을까? 우리의 숙소인 해남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해남 대흥사 밑에 있는 유스호스텔에서 자고 내일 새벽쯤 대흥사에 올라갈 참이다. 조용한 산사의 새벽공기를 마실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얘기가 깊어지니, 새벽이 금방 올 것 같다.
잠깐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이미 새벽이 왔는가? 이것저것 꼼지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흥사의 새벽공기를 마시러 가야 할 시간인가보다. 일어나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챙겨입는다. 새벽공기가 차가울 것 같다. 준비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차를 타고 대흥사로 향했다. 대흥사 입구는 걸어가면 산책길로 참 좋지만 새벽이라 주위에 보이는 것도 없고, 오늘의 일정이 빡빡한 관계로 차를 타고 대흥사 앞까지 들어갔다. 매표를 하고 입구쪽에서 5분만 걸어들어가면 대흥사 부도밭이 우리를 반긴다. 이곳에 서산대사의 부도가 있다는데 조금있다 날이 밝으면 찾아볼 요량이다.
우선 천불전을 찾았다. 새벽공기에 불을 밝힌 천불전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것 같다. 불빛에 천불전의 공포가 멋있다. 대흥사에서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원교 이광사가 신지도로 유배를 갈 때 대흥사에 들려 써 주었다고 한다. 대웅보전 글씨도 원교 이광사의 글씨인데, 이 편액은 추사 김정희와 얽힌 일화로 유명하다.
1840년 제주로 유배를 가던 추사 김정희가 대흥사에 주석하고 있던 벗이자, 동갑내기인 초의를 만나기 위해 들렀다. 추사는 초의에게 대웅보전의 글씨가 촌스럽다고 깎아내리며, 자신의 글씨로 편액을 하라고 말했다. 8년후 유배를 마치고 돌아가던 추사가 다시 대흥사에 들렀다. 그리고 다시 대웅보전의 편액을 원교 이광사의 글씨로 걸라고 한다. 8년여의 유배기간 동안 당당하여 오만하기까지 했던 추사의 자존심이 추사체의 완성으로 너그럽고 완벽한 멋으로 변했기 때문일까? 추사도 대흥사에 글씨를 남겼는데, 대웅보전 옆에 요사체에 걸려있는 무량수각 이라는 글씨이다. 힘있게 써 내려간 글씨가 추사선생의 글씨의 참 맛을 느끼게 한다.
남원 구역을 어느 정도 들러본 후 북원 구역으로 향했다. 북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 들어가야 한다. 다리를 건너며 마주치는 건물이 침계루이다. 승주 송광사에도 침계루가 있는데, 침계루는 시내를 배고 누웠다는 뜻이다. 여느 현판의 뜻보다 시적인것 같다. 시내를 배고 누우면, 시냇물 소리에 저절로 깊은 잠에 빠질 것 같다.
대웅보전과 무량수각의 추사 글씨를 감상한 후 두륜산을 바라보았다. 마침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햇빛이 두륜산의 산록을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대둔사 답사를 마치고, 게장에 아침을 먹은 후 미황사로 향했다. 정말로 땅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 미황사. 예전에도 한번 온적은 있지만, 마치 꿈속에서나 본 듯 아련한 기억만 있다. 달리기를 40여분, 미황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기 시작한다. 반도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이 묘하기까지 하다.
달마산 미황사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경덕왕 8년(749)에 돌로 만든 배 한척이 땅끝마을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나 며칠동안이나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의조화상이 제자를 이끌고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했더니 그 배가 육지에 닿았다. 그런데 그 배안에는 금으로 만든 사람이 노를 잡고 있었고, 금으로 된 함과 검은 바위가 있었다. 금합에는 여러 종류의 불상, 불경과 탱화가 들어 있었고, 황소 한 마리가 검은 바위를 깨뜨리고 나왔다. 의조화상은 이를 이상히 여기고 잠들었다가 꿈속에 금인이 나타나서 그 소에 불상과 불공과 탱화를 싣고서 가는데로 따라가다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지으라는 꿈을 꾸었다. 의조화상은 꿈에서 깨어 그 소에 불상과 불공 탱화를 싣고 갔다. 소는 달마산 중턱에 이르러 크게 울더니 넘어져 일어나질 못했다. 그곳에 절을 짓고 황소에 가르침에 따랐다 하여, 아름다운 황색절이라는 의미로 '미황사' 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불교의 해로유입설을 생각해보게 하는 재미있는 전설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불교는 고구려 승려 도림에 의해 육로로 중국에서 전파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전설 뿐 아니라 영광 법성(法聖)포와 불갑사(佛甲寺)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법성은 풀이하면 불법의 성스러움이고 불갑사는 불이 으뜸이라는 소리이다.
달마산 미황사의 대웅보전에는 재미있는 것이 있다. 대웅보전의 주춧돌을 보면 게가 새겨져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작을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미황사 대웅보전에서 볼 수 있었던 남해의 쪽빛 바다는 앞에 지어진 보제루 덕분에 가려서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미황사를 어느 정도 둘러보고 산길을 따라 미황사의 걸작 부도군들을 찾아갔다. 예전에는 작은 오솔길을 걸어가야 했는데, 이제는 길을 넓혀놓았다. 그 작은 오솔길을 걸으며 오른편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 바다를 감상하는 것도 좋았는데, 길이 넓여지니 그런 맛도 없어지는 것 같다. 미황사의 부도군들에서도 재미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오리며, 게며 여러가지 생물들이 새겨진 부도군들은 마치 어린애가 찰흙을 오물조물 빚어서 붙여놓은 것처럼 재미있는 모습들을 하고 있다.
미황사를 어느 정도 둘러본 후 녹우당으로 향했다. 해남윤씨의 종가인 녹우당은 고택 앞의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모습이 비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효령대군의 스승이었던 고산 윤선도가 효령대군이 왕이 되면서 수원에 지워준 집을 뜯어다가 다시 지은 것이다. 녹우당에서 호젓한 햇볕을 즐기며 고택을 감상하는 것도 일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을쯤에 온다면 바람에 날리는은행나무 잎을 보는 것도 일품일 것이다.
일주일전의 기억을 살려 땅끝 마을 해남 답사기를 시작한다.
그동안 너무도 조용하게 살아와서 그런지, 해남답사를 준비하는 나는 굉장히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떨리기까지 했다. 이번 답사는 오손도손하게 해남길을 걸으며,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11월 22일 토요일 오후, 광천동 버스터미널에서 향숙 누나를 만나 가볍게 요기를 하고,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산 후 필구형의 차를 타고 해남으로 향했다. 토요일 오후의 햇빛은 해남으로 향하는 차의 창가를 비추며, 분주하게 우리를 따라왔다.
광목간 도로를 타고 광주시내를 벗어나 나주로 향하니 주위에 서 있던 건물들이 낮아지며 조금씩 들판이 시작된다.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이지만 오늘따라 시원해 보인다. 광목간 도로에서 나주시내쪽으로 핸들을 돌려 들어간다. 영암을 거쳐 강진, 해남쪽으로 난 새로운 도로를 타기 위해서다. 아침 일찍 이 도로를 타면 멀리 아스라하게 구름에 쌓인 월출산을 보며 달릴 수 있고, 오후쯤에 도로를 타면 노을에 빨갛게 물든 월출산을 보며 달릴 수 있다. 쭉 뻗은 도로에서 모든 들판을 제압하고 우뚝 서 있는 기암절벽들이 예술이다.
열심히 도로를 달려 1시간 30분쯤 됐을까? 해남이 다왔음을 알리는 팻말이 우리를 반긴다. 해남 팻말이 보이는 도로를 타고 가기를 20분여 해남군청에 차를 세우고, 다른 일행들을 기다린다. 해남군청에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소나무는 을묘왜변때 해남의 현감이었던 변협이 심은 것으로 인근고을들이 을묘왜변때 성을 못 지켰던 반면, 해남은 왜적에 맞서 성을 지켰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소나무다. 그래서 소나무의 이름도 守城松(수성송)이다. 그때 심은 소나무가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폭의 그림처럼 기울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멋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도착했다는 연락이 온다. 기분이 좋아 달려가다 길중간에서 서로를 얼싸 안았다. 얼굴은 아무도 안 변했지만, 마치 어디 변한곳이 없는가? 두리번 거리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웃기에 바쁘다. 군청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요기를 하고 숙소로 향한다. 이미 해는 졌지만, 밤이 시작됐지만 해남의 밤은 더욱더 칠흑같다.
밤을 뚫고 15분쯤 달렸을까? 우리의 숙소인 해남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해남 대흥사 밑에 있는 유스호스텔에서 자고 내일 새벽쯤 대흥사에 올라갈 참이다. 조용한 산사의 새벽공기를 마실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얘기가 깊어지니, 새벽이 금방 올 것 같다.
잠깐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이미 새벽이 왔는가? 이것저것 꼼지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흥사의 새벽공기를 마시러 가야 할 시간인가보다. 일어나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챙겨입는다. 새벽공기가 차가울 것 같다. 준비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차를 타고 대흥사로 향했다. 대흥사 입구는 걸어가면 산책길로 참 좋지만 새벽이라 주위에 보이는 것도 없고, 오늘의 일정이 빡빡한 관계로 차를 타고 대흥사 앞까지 들어갔다. 매표를 하고 입구쪽에서 5분만 걸어들어가면 대흥사 부도밭이 우리를 반긴다. 이곳에 서산대사의 부도가 있다는데 조금있다 날이 밝으면 찾아볼 요량이다.
우선 천불전을 찾았다. 새벽공기에 불을 밝힌 천불전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것 같다. 불빛에 천불전의 공포가 멋있다. 대흥사에서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원교 이광사가 신지도로 유배를 갈 때 대흥사에 들려 써 주었다고 한다. 대웅보전 글씨도 원교 이광사의 글씨인데, 이 편액은 추사 김정희와 얽힌 일화로 유명하다.
1840년 제주로 유배를 가던 추사 김정희가 대흥사에 주석하고 있던 벗이자, 동갑내기인 초의를 만나기 위해 들렀다. 추사는 초의에게 대웅보전의 글씨가 촌스럽다고 깎아내리며, 자신의 글씨로 편액을 하라고 말했다. 8년후 유배를 마치고 돌아가던 추사가 다시 대흥사에 들렀다. 그리고 다시 대웅보전의 편액을 원교 이광사의 글씨로 걸라고 한다. 8년여의 유배기간 동안 당당하여 오만하기까지 했던 추사의 자존심이 추사체의 완성으로 너그럽고 완벽한 멋으로 변했기 때문일까? 추사도 대흥사에 글씨를 남겼는데, 대웅보전 옆에 요사체에 걸려있는 무량수각 이라는 글씨이다. 힘있게 써 내려간 글씨가 추사선생의 글씨의 참 맛을 느끼게 한다.
남원 구역을 어느 정도 들러본 후 북원 구역으로 향했다. 북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 들어가야 한다. 다리를 건너며 마주치는 건물이 침계루이다. 승주 송광사에도 침계루가 있는데, 침계루는 시내를 배고 누웠다는 뜻이다. 여느 현판의 뜻보다 시적인것 같다. 시내를 배고 누우면, 시냇물 소리에 저절로 깊은 잠에 빠질 것 같다.
대웅보전과 무량수각의 추사 글씨를 감상한 후 두륜산을 바라보았다. 마침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햇빛이 두륜산의 산록을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대둔사 답사를 마치고, 게장에 아침을 먹은 후 미황사로 향했다. 정말로 땅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 미황사. 예전에도 한번 온적은 있지만, 마치 꿈속에서나 본 듯 아련한 기억만 있다. 달리기를 40여분, 미황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기 시작한다. 반도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이 묘하기까지 하다.
달마산 미황사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경덕왕 8년(749)에 돌로 만든 배 한척이 땅끝마을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나 며칠동안이나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의조화상이 제자를 이끌고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했더니 그 배가 육지에 닿았다. 그런데 그 배안에는 금으로 만든 사람이 노를 잡고 있었고, 금으로 된 함과 검은 바위가 있었다. 금합에는 여러 종류의 불상, 불경과 탱화가 들어 있었고, 황소 한 마리가 검은 바위를 깨뜨리고 나왔다. 의조화상은 이를 이상히 여기고 잠들었다가 꿈속에 금인이 나타나서 그 소에 불상과 불공과 탱화를 싣고서 가는데로 따라가다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지으라는 꿈을 꾸었다. 의조화상은 꿈에서 깨어 그 소에 불상과 불공 탱화를 싣고 갔다. 소는 달마산 중턱에 이르러 크게 울더니 넘어져 일어나질 못했다. 그곳에 절을 짓고 황소에 가르침에 따랐다 하여, 아름다운 황색절이라는 의미로 '미황사' 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불교의 해로유입설을 생각해보게 하는 재미있는 전설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불교는 고구려 승려 도림에 의해 육로로 중국에서 전파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전설 뿐 아니라 영광 법성(法聖)포와 불갑사(佛甲寺)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법성은 풀이하면 불법의 성스러움이고 불갑사는 불이 으뜸이라는 소리이다.
달마산 미황사의 대웅보전에는 재미있는 것이 있다. 대웅보전의 주춧돌을 보면 게가 새겨져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작을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미황사 대웅보전에서 볼 수 있었던 남해의 쪽빛 바다는 앞에 지어진 보제루 덕분에 가려서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미황사를 어느 정도 둘러보고 산길을 따라 미황사의 걸작 부도군들을 찾아갔다. 예전에는 작은 오솔길을 걸어가야 했는데, 이제는 길을 넓혀놓았다. 그 작은 오솔길을 걸으며 오른편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 바다를 감상하는 것도 좋았는데, 길이 넓여지니 그런 맛도 없어지는 것 같다. 미황사의 부도군들에서도 재미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오리며, 게며 여러가지 생물들이 새겨진 부도군들은 마치 어린애가 찰흙을 오물조물 빚어서 붙여놓은 것처럼 재미있는 모습들을 하고 있다.
미황사를 어느 정도 둘러본 후 녹우당으로 향했다. 해남윤씨의 종가인 녹우당은 고택 앞의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모습이 비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효령대군의 스승이었던 고산 윤선도가 효령대군이 왕이 되면서 수원에 지워준 집을 뜯어다가 다시 지은 것이다. 녹우당에서 호젓한 햇볕을 즐기며 고택을 감상하는 것도 일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을쯤에 온다면 바람에 날리는은행나무 잎을 보는 것도 일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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