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학교에서 열린 학술 심포지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발표자들의 발표가 모두 끝나고, 방청석에 앉아 있는 방청객들과의 종합토론 시간이었다. 이날 발표주제가 전남지역의 전통마을인 영암 영보마을에 대한 것이어서, 영보마을의 많은 어르신들이 심포지움에 참석하셨다.
영보마을에 초청장을 보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참석하실 줄 몰랐던 교수님들은 참으로 난감해하시며, 논문을 발표하실때도 말을 조심하셨다. (이날 발표된 내용들은 영암 영보마을의 역사, 문화적인 맥락, 가문에 대한 글, 영보마을의 활성화 방안등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발표된 논문중에는 영보마을에 자리잡은 여러 가문들의 족보를 분석하여, 영보마을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사회경제적인 변화는 어떤 것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논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워낙에 가문의 일이나 족보에 민감한 어르신들이라 잘못말 할 경우 심포지움장에서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으므로 약간의 긴장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종합토론으로 들어가자, 앞자리에서 묵묵히 듣고 계시던 어르신께서 발언권을 얻고 일어나셨다. 첫 인상부터 완고해보이던 그 어르신은 일어나시자 마자, 선생님들의 논문을 조목조목 짚으며, 이것이 틀렸고 저것이 틀렸고 등등 말을 이어나갔다. 심포지움에 참여한 사람들은 조마조마한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논문의 주인공인 영보마을의 XXX가 첩을 들였다는 내용에 대해 잘못됐다고 말했다. 결코 첩을 들인적이 없단다. 자신들의 족보에는 절대 그런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이 '저희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족보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참고한 족보는 X씨 중앙종회의 족보였습니다. 그 족보에 그렇게 쓰여있어서 그렇게 썼습니다' 했다. 그러자 이 어르신 노발대발이다. 어디에 그렇게 써 있느냐, 우리는 절대로 그런적 없다 등등. 아뭏든 다른 어르신들이 말려도 아랑곳않고 족보얘기에만 열을 올리셨다.
이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나 나나할것 없이 너무나 '우리' 가 강하다.
우리 누구, 우리 어디...
우리는 복수를 가리킨다. 너, 나는 개인을 지칭하고 단수적인 용어지만, 우리는 지금 말을 듣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는 모두를 가리킨다.
한때 우스개소리로 '우리 아내' 하면 모두의 아내인가? 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말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민족주의적인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면 무엇이 우리에게 강한 민족주의를 심어줬을까?
우리 역사에서 강한 '우리' 의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을을 이루고 살때도 향약을 만들어 서로를 규제하고, 서로의 생활이 원활하게 했으며, 서로에게 해가 되는 사람은 멀리 내쫒았다. 이것은 '우리'를 방어하고 '우리' 가 잘 살기 위한 목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외침 또한 강한 '우리' 의식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제시대를 거치며, 일본인과 차별된 조선인은 더욱더 '우리'가 강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라는 의식이 많이 강화된것은 현대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승만은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를 내세우며, '우리'를 강조했고, 박정희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받쳐준 것 또한 '우리' 라는 강한 소속감이었다. 그들이 어느정도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반공이데올로기를 활용하며, 계속적으로 '우리' 라는 사상을 주입시켰고 활용했던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서서히 사회가 다원화되고 민주화되면서 '우리' 라는 의미가 조금씩은 퇴색되가고 있다. 월드컵때 하나로 뭉쳐 KOREA를 외친 '우리'는 뭔가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뭉친 '우리'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궁색하다. 그렇다면 과연 그때 모인 '우리' 는 뭔가?
그들은 각자의 재미와 흥미로 그냥 모인 그들이었다. 개개인이 모여 잠시동안 '우리'를 형성한 것일뿐, 끈끈한 유대감과 종족의식(?)을 포함한 '우리'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모자란 집단이었다. 이것은 더 넓게 보면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곳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본다. 일각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보며 말들이 많지만, 그들에게 '우리' 라는 의식이 있다면? 이라는 가정을 세우면 금방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만약 철저하게 '우리' 라는 의식을 교육받으며 자랐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우리' 보다는 너와 나에 더 충실하다. 하지만 이들이 가족으로 돌아가면, 너와 나보다는 '우리' 가 강해진다. 하지만 나의 생각에는 이것은 2중적인 과도기적 모습일 뿐 앞으로 계속적으로 사회에 쏟아질 젊은이들은 가족으로 돌아가도 '우리' 라는 의식이 많이 없어지고,너와 나 개인대 개인이 주체가 되는 우리가 될 것이다.
영보마을에 초청장을 보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참석하실 줄 몰랐던 교수님들은 참으로 난감해하시며, 논문을 발표하실때도 말을 조심하셨다. (이날 발표된 내용들은 영암 영보마을의 역사, 문화적인 맥락, 가문에 대한 글, 영보마을의 활성화 방안등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발표된 논문중에는 영보마을에 자리잡은 여러 가문들의 족보를 분석하여, 영보마을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사회경제적인 변화는 어떤 것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논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워낙에 가문의 일이나 족보에 민감한 어르신들이라 잘못말 할 경우 심포지움장에서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으므로 약간의 긴장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종합토론으로 들어가자, 앞자리에서 묵묵히 듣고 계시던 어르신께서 발언권을 얻고 일어나셨다. 첫 인상부터 완고해보이던 그 어르신은 일어나시자 마자, 선생님들의 논문을 조목조목 짚으며, 이것이 틀렸고 저것이 틀렸고 등등 말을 이어나갔다. 심포지움에 참여한 사람들은 조마조마한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논문의 주인공인 영보마을의 XXX가 첩을 들였다는 내용에 대해 잘못됐다고 말했다. 결코 첩을 들인적이 없단다. 자신들의 족보에는 절대 그런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이 '저희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족보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참고한 족보는 X씨 중앙종회의 족보였습니다. 그 족보에 그렇게 쓰여있어서 그렇게 썼습니다' 했다. 그러자 이 어르신 노발대발이다. 어디에 그렇게 써 있느냐, 우리는 절대로 그런적 없다 등등. 아뭏든 다른 어르신들이 말려도 아랑곳않고 족보얘기에만 열을 올리셨다.
이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나 나나할것 없이 너무나 '우리' 가 강하다.
우리 누구, 우리 어디...
우리는 복수를 가리킨다. 너, 나는 개인을 지칭하고 단수적인 용어지만, 우리는 지금 말을 듣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는 모두를 가리킨다.
한때 우스개소리로 '우리 아내' 하면 모두의 아내인가? 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말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민족주의적인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면 무엇이 우리에게 강한 민족주의를 심어줬을까?
우리 역사에서 강한 '우리' 의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을을 이루고 살때도 향약을 만들어 서로를 규제하고, 서로의 생활이 원활하게 했으며, 서로에게 해가 되는 사람은 멀리 내쫒았다. 이것은 '우리'를 방어하고 '우리' 가 잘 살기 위한 목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외침 또한 강한 '우리' 의식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제시대를 거치며, 일본인과 차별된 조선인은 더욱더 '우리'가 강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라는 의식이 많이 강화된것은 현대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승만은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를 내세우며, '우리'를 강조했고, 박정희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받쳐준 것 또한 '우리' 라는 강한 소속감이었다. 그들이 어느정도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반공이데올로기를 활용하며, 계속적으로 '우리' 라는 사상을 주입시켰고 활용했던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서서히 사회가 다원화되고 민주화되면서 '우리' 라는 의미가 조금씩은 퇴색되가고 있다. 월드컵때 하나로 뭉쳐 KOREA를 외친 '우리'는 뭔가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뭉친 '우리'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궁색하다. 그렇다면 과연 그때 모인 '우리' 는 뭔가?
그들은 각자의 재미와 흥미로 그냥 모인 그들이었다. 개개인이 모여 잠시동안 '우리'를 형성한 것일뿐, 끈끈한 유대감과 종족의식(?)을 포함한 '우리'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모자란 집단이었다. 이것은 더 넓게 보면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곳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본다. 일각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보며 말들이 많지만, 그들에게 '우리' 라는 의식이 있다면? 이라는 가정을 세우면 금방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만약 철저하게 '우리' 라는 의식을 교육받으며 자랐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우리' 보다는 너와 나에 더 충실하다. 하지만 이들이 가족으로 돌아가면, 너와 나보다는 '우리' 가 강해진다. 하지만 나의 생각에는 이것은 2중적인 과도기적 모습일 뿐 앞으로 계속적으로 사회에 쏟아질 젊은이들은 가족으로 돌아가도 '우리' 라는 의식이 많이 없어지고,너와 나 개인대 개인이 주체가 되는 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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