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돋힌 눈으로 바라보는 독재 코미디

감독은 영화의 전반에 송광호의 어리숙하고 미덥지 않은 행동, 의도하지 않은 사건전개를 깔아 놓고서는 한 술 더 떠서 영화를 시작하면서 한 마디 내 뺃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 사실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영화의 전반에 흐르는 그들의 말투와 행동만 보고도 누구누구인지 뻔히 알 수 있는데, 저런 말을 뺃어놓고 영화를 시작하는 것은 조롱의 수위를 한층 높이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랬던 감독의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영화 내내 독재의 코미디를 조롱하지만, 속은 그리 가볍지 않은 주제이다. 약한 자에게 강하게 보이려 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아내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 소심한 성한모는 그대로 평범함으로 가득한 국민의 표본으로 볼 수 있다.

국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이발사 성한모는, 이제까지 국가가 하는 일이라면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믿고 따랐으며, 순진하게도 다시 한 번 또 한번 기회를 주고 또 주었던 순진하고 어떻게 보면 바보같기도 한 우리 국민들의 자화상이다.

이런 평범한 이발사 성한모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기본은 그의 아들 성낙안이다. 성한모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끔찍이도 위한다. 불면 날라갈까 잡으면 으스러질까 조심스럽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워 하는 아들 낙안이는 영화속에서 독재를 가장 극명하게 조롱하며 착하기만한 국민이었던 아버지를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사실 낙안이의 역할은 그리 가볍지 않다. 이미 태어날때부터 낙안이의 역할은 영화에서 말하려고하는 국가와 국민, 자유민주에 대한 얘기의 끄나불을 푸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막 진통을 시작해서, 금방이라도 얘를 낳을것 같은 아내를 리어카에 태우고 거리로 선 성한모를 맞이한 것은 독재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시위대(역사적으로는 4.19를 상징한다)이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성한모를 의사로 착각한 학생들은 그의 리어카에 부상당한 학생들을 태워줄것을 간청하고 순진하기만한 성한모는 제대로 말한번 못하고 어느덧 부상당한 학생들을 태우고 광장을 도는 우스깡스러운 장면을 연출한다. 이렇게 낙안이는 태어났다.

역사적으로 보면 3,15부정선거를 통해 다시 집권한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탄압에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던 4.19를 의미하는 영화속의 이 장면은, 국가가 하는 일은 모두가 옳다고 여기는 국민들이 처음으로 국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자유와 민주를 요구하는 첫 사건이었다.

이때 낙안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국민들의 요구가 처음으로 국가에 으해 받아들였던 사건, 즉 자유와 민주에 대한 첫 울음의 시작으로 형상화 됐다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울음을 터뜨린 자유와 민주(성낙안)의 삶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다시 정권을 잡은 세력은 극렬하게 반공을 부르짖었고, 국민 모두도 반공을 외쳤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것은 통제되고 감시받았으며, 자유와 민주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통제와 감시의 우스깡스러운 연출은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지만, 영화의 전개상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는 바로 설사사건이다. 설사를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간첩과 접선했다는 미명하에 정보부로 잡혀간 성낙안은 취조실에서 전기고문을 받게 되고, 결국은 다리를 쓰지 못하는 불구가 된다.

이 장면은 군사독재 정권의 반공을 위한 감시와 통제가 이제 갓 태어나 열심히 뛰어다닐 성낙안(자유와 민주)의 다리를 불구로 만들어버린 장면이다.

성한모는 이 사건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국가에 대해 충성하고 모든것을 받아들였던 성한모에게 아들의 다리 불구는 참을 수 없는 아픔이다. 무엇도 잘못한 것 없는 어린 아들이 불구가 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도 참고, 수긍하고 살았던 국가에 대한 마음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상징한다. 다르게 말하면, 국가가 하는 모든 일이 모두 옳은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일깨워준 사건이라는 것이다.

성한모는 아들의 다리를 낫게 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지만 진척은 없고, 그렇게 아들은 커간다. 이제 젊은이가 된 아들은 아직도 혼자의 힘으로는 걷지도 못하는 다리가 불구인 아들이다.

시간은 흘러서 역사의 부침속에 다시 정권이 바뀌고 성한모는 다시 청와대 이발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전에 성한모는 아니었다. 이발하라고 자신앞에 앉은 최고통치자에게 성한모는 예전에는 차마 할 수 없었던 한마디 직격탄을 날린다.

각하! 머리가 자라면 다시 오겠습니다!

주변 머리밖에 없는 머리를 어떻게 이발하라는 것인가? 이발사인 성한모에게는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다. 어쩌면 성한모는 당연히 갂을 것이 없으므로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보면 이제 성한모도 국가가 하는 모든일을 옳다고 믿고 따르지 않음을 그리고 자신이 할말은 이차저차한 생각없이 과감하게 말해버림을 알 수 있다. 즉 성낙안의 다리 불구사건은 국가는 국민에게 무엇인가? 에 대한 생각을 성한모에게 던져 주었는지 모른다.

국가가 하는 모든 일은 옳다고만 생각했던 성한모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결국 우리 국민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사고방식, 국가에 대한 사고방식에 전환이 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는 주술적이기는 하지만, 전 통치자의 초상에서 파놓은 가루로 만든 약을 먹은 성낙안이 조금씩 걸음걸이를 시작한다. 불구가 된 줄로만 알았던 다리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다시 걷는 성낙안. 다시 자유와 민주의 걸음걸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예전과 똑같은 군사정권이지만 성낙안이 어렵사리 다리를 풀고 걸음걸이를 시작하듯, 자유와 민주의 걸음걸이가 어렵사리 다시 시작됨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모든것이 그냥 한가족의 얘기이며, 평범한 이발사 아버지와 그 아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평범한 한 국민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 평범한 한 국민은 국가에 순응하면서도 자유와 민주를 끊임없이 갈망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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