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16일 충청지역 논산답사를 마치고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만큼 나의 가슴을 울리게 한 말은 없다.
이말을 처음 접한때는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부터이다.
그저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학생에 불과했던 나에게도 대학 진학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나에게 앞으로의 비전과 학문적 욕구사이에서 심한 괴리감을 안겨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공부에 목말라 한 적이 없었다.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서 초조해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미친듯이 뛰어든 적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단지 네가지 이유만으로 나는 선뜻 역사학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눈 뜬 봉사가 된 기분이었다.
국사책에 나온 탑, 불상, 건물들....
이것들이 어떻단 말인가?
그들은 서 있을 뿐 나에게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지도, 가라고 인사해주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와서 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눈 뜬 봉사 마냥 서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갈 뿐이었다.
한 동안 말도 못하게 괴로워해야 했다.
역사학을 전공하겠다고, 맹랑하게 뛰어든 당돌한 선택에 나 자신을 나무래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장안에 숫한 화제를 뿌리며, 답사 신드롬을 만들어냈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만났다.
이 책을 만난것도 나의 뜻이라기 보다는 전공자로서의 의무감에서였다.
그리고 그 책속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문구를 만났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귀가 멍멍해지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 앞에서 보이지 않았으며, 듣지도 못했다.
그 뒤로 시간만 나면 교수님들을 따라다니며, 논두렁과 밭고랑에 묻혀있던 문화유적들을 만나고 다녔다.
TV에서 해주는 문화재 관련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하나씩, 둘씩 책도 사 모았다.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 하지도,
보이지 않아서 답답해하지도,
들리지 않아서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들앞에서 조그마한 눈을 떠보려고,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시작한 답사가 이제 어렴풋이나마 보이고, 들린다.
어떤때는 저 유명한 미술사가들이 종이위에 쏟아놓았던 찬사들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못내 아쉬운 감은 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이 아직 들리지 않는다.
내 마음의 턱을 낮춰 저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 같다.
관촉사의 '얼큰이 부처님' 이 다가가면 갈 수록 크게 보이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나는 굳게 담은 입술속에서 시원하게 내뺐을 말을 듣고자 가까이 다가가는 것으로 믿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만큼 나의 가슴을 울리게 한 말은 없다.
이말을 처음 접한때는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부터이다.
그저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학생에 불과했던 나에게도 대학 진학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나에게 앞으로의 비전과 학문적 욕구사이에서 심한 괴리감을 안겨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공부에 목말라 한 적이 없었다.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서 초조해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미친듯이 뛰어든 적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단지 네가지 이유만으로 나는 선뜻 역사학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눈 뜬 봉사가 된 기분이었다.
국사책에 나온 탑, 불상, 건물들....
이것들이 어떻단 말인가?
그들은 서 있을 뿐 나에게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지도, 가라고 인사해주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와서 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눈 뜬 봉사 마냥 서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갈 뿐이었다.
한 동안 말도 못하게 괴로워해야 했다.
역사학을 전공하겠다고, 맹랑하게 뛰어든 당돌한 선택에 나 자신을 나무래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장안에 숫한 화제를 뿌리며, 답사 신드롬을 만들어냈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만났다.
이 책을 만난것도 나의 뜻이라기 보다는 전공자로서의 의무감에서였다.
그리고 그 책속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문구를 만났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귀가 멍멍해지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 앞에서 보이지 않았으며, 듣지도 못했다.
그 뒤로 시간만 나면 교수님들을 따라다니며, 논두렁과 밭고랑에 묻혀있던 문화유적들을 만나고 다녔다.
TV에서 해주는 문화재 관련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하나씩, 둘씩 책도 사 모았다.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 하지도,
보이지 않아서 답답해하지도,
들리지 않아서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들앞에서 조그마한 눈을 떠보려고,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시작한 답사가 이제 어렴풋이나마 보이고, 들린다.
어떤때는 저 유명한 미술사가들이 종이위에 쏟아놓았던 찬사들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못내 아쉬운 감은 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이 아직 들리지 않는다.
내 마음의 턱을 낮춰 저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 같다.
관촉사의 '얼큰이 부처님' 이 다가가면 갈 수록 크게 보이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나는 굳게 담은 입술속에서 시원하게 내뺐을 말을 듣고자 가까이 다가가는 것으로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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