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으로 서버 접속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지메일, 드롭박스 등의 서비스는 익스플로러보다 크롬으로 접속하는 것이 작업이 훨씬 수월하다. 물론 크롬 쓰다 익스플로러 쓰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귀챦기는 하지만 역시 크롬의 속도는 따라갈 수 없다. 이제 크롬에서 보안쉘로 접속할 수 있는 앱이 나왔다. 이름하여 secure shell. 이제 쉽게 서버에 접속할 수 있다. 먼저 스크린샷을 보자.
아직 베타버전이라 한글 폴더 이름은 깨진다. 하지만 번거롭게 서버 접속 클라이언트(filezilla 같은)를 열지 않고 크롬에서 손쉽게 작업이 가능하다. 앱은 chrome 웹 스토어에서 secure shell로 검색하면 설치할 수 있다. (https://chrome.google.com/webstore/detail/pnhechapfaindjhompbnflcldabbghjo?utm_source=gmail) * 정보는 페이스북 생활코딩 그룹의 우성섭님께서 올리신 게시물에서 얻음
* 이 글은 다음(daum) 책에서 진행한 이벤트 <책 시사회>에서 제공된 책을 읽고 작성되었음. 혁신을 위한 6가지 법칙 몸을 움직이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어디로든 가는 것이다. 몸이 움직이면 눈은 어떤 사물, 사람을 보게 되고 오감이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게 된다. 곧 이것은 경험이 되어 머리속에 축적된다. 노나카 이쿠지로의 <생각을 뛰게하라>는 혁신을 위해 동사적 사고를 주문한다.
노나카 교수가 제시하는 혁신을 위한 6가지 법칙은
실천적 삼단논법을 익힌다. 모든 경험과 지식을 엮는다. 행동하며 생각한다. 동사를 중심으로 사고한다. 보이지 않는 맥락을 간파한다. 우연을 필연화한다. 노나카 이쿠지로, 가스미 아키라 <생각을 뛰게하라> 271p
이다. 위의 법칙들은 모두 행동의 토대위에서 이루어지는 법칙들이다. "나는 00다"라는 단정적이고, 주어적인 표현보다는 "나는 ㅇㅇ가 된다", "나는 ㅇㅇ를 한다" 같은 동사적인 표현을 통해 실행력과 실천력을 만들어 낸다.
우리 주위에는 동사적인 표현이 많다. 특히 어느 조직에나 있을 법한 구호를 유심히 살펴보면 동사적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동사적인 표현들은 미래를 표현하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상징한다. 외치는 것만으로도 웬지 모를 힘이 생긴다. 여기에 특별한 경험을 통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지혜를 만들어내는 과정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조그마한 사실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며, 일단 행동하고 본다는 것이다.
내가 학부과정을 마칠 즈음,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나에게 지도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을 하든 일단 저질러 봐라. 일단 저질러진 일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지 않겠니? 무엇을 하든 일단 발을 들여놓고 그 다음에 생각을 하든, 거기서 그만두는 것이 시도도 안해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래서 나도 고민이 될 때면 일단 해본다. 저질러 봐야 경험도 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도 있고, 새로운 생각이 든다. 결국 행동하지 않으면 경험이 생기지 않고, 경험을 통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그 안에서 파생되는 지혜 또한 얻을 수 없다.
일단은 저질러 보는 것이다. 지금 당장...그 대신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이전에 쌓은 지식과 경험들과 합쳐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낼 것이라는 동사적 사고는 잊지 말고...
* 내가 흐름출판으로 부터 받은 책은 정식출시전 교정을 위해 나온 책인것 같다. 시중에서 봐오던 책들에 비해 맞춤법이나 문장의 연결이 부드럽지 못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를 것이다. 의도 하지도 않았고, 생각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앉은 것도 아닌데, 어느 날인가 문득! 이렇게 사는게 맞나? 잘하고 있나? 아니면 잘 되고 있는건가?
누구나에게 필요한 공간 누구나에게 필요한 공간이다. 마치 잊고 있었던 것처럼. 남자들은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의식하고 있지는 않다. 내가 군복무를 할 때, 바로 위 선임이 이런 말을 했다.
왜 담배를 피우는지 알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빨아 드렸다, 후~ 하고 내 뱉쟎아. 그때 가슴이 시원해진다. 그래서 담배를 피는 거래...
그때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씩 속이 답답하고 힘들때 담배를 한 가치씩 얻어 피웠다. 부대 막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쪼그려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훅 내 뱉으면 가슴속에서 울컥함과 어딘지 모를 후련함이 함께 올라왔다.
남자들은 그 기분을 알 것이다. 그리고 이내 몽롱한 상태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그리움 같은 것을 맞아들이기도 했고,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겠다는 생각도 했고, 또 전역후에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정말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느날 문득 생각이 들 때 전역을 하고,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취직하고 또 회사를 서울로 옮기고 어느 날엔가 문득 정말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잘 살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찾아왔다. 어딘가 조용한 곳에 가서 벽이라도 보고 몰두를 하고 싶은데, 도저히 시간도 안 났고, 혼자 떠나기가 정말 힘들었다. 혼자 떠난다는 것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는 분이 지리산에 함께 가자고 했다. 흔쾌이 수락하고 새벽4시에 차를 몰고 내려가 지리산 둘레길 1코스르 마치고 왔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다음에도 혼자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여름 휴가를 이용하여 제주 올레길을 다녀왔다. 두려움이 찾아왔다. 혼자 할 수 있을까? 갈 수 있을까? 그때 갑자기 회사에 무슨 일이 생겨서 취소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내일 아침 비행기 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이 함께 찾아왔다. 이런 불안함이 결국엔 길을 걸을 만한 장비가 없는데...어쩌지? 하는 불안으로까지 번졌다. 그렇지만 이번엔 달랐다. 매일 생활하던 나의 조그만 방과, 서울이라는 공간을 훌쩍 이탈하고 싶은 생각이 더 컸다. 주섬주섬 필요한데로 챙기고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자기대면의 공간 제주로 떠나기전 이런 저런 코스를 찾아보다가 4코스를 맨 처음으로 걷기로 했다. 22.9km에 달하는 장거리 코스를 그것도 한 여름에 걷기로 한 건 무모하기도 했지만, 제주가 주는 매력에 그런 걱정은 들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제주는 나에게 특별한 공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제주에서 보냈고, 이후에도 몇 번씩 제주를 들락날락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한반도 끝에 자리한 널직한 섬이지만 나에게는 특별하고 정든 공간이었다.
4코스 초입에서 올레길 안내소에 들어갔다. 안내소에 있던 삼촌(제주에서는 모르는 사람도 삼촌이라 부른다)이 이런 말을 했다.
4코스가 올레길 코스 중 가장 길지만, 어떤 고민이 있거나, 걱정하는게 있다면 이 코스를 다 걷고 나면 코스가 끝날 쯤에 그 고민이 풀릴겁니다.
그 말이 정답이었다. 땡볕이 내리쬐는 4코스를 혼자 걷자니, 이런 저런 잡동사니 같은 생각부터, 진지한 생각까지 섬안으로 파고드는 파도처럼 무수히 밀려왔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고민과 걱정거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걸어가며, 밀려드는 파도소리와 바람에 한동안 넋을 잃고 쉬기도 했다.
코스가 끝날 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민하고 걱정했던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해결되고, 점차 실마리가 보였다. 해결책은 이미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
자기대면의 공간이 주는 즐거움 회사에 끌려다니고, 일에 파묻히고, 사람에 힘들고, 삶이 힘들다면 자신을 위해 자기대면의 공간을 만들어 보길 권한다. 되도록이면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을 벗어나서 멀리 있는 공간, 생소한 공간이 더 좋다. 그리고 혼자이면 더 좋다. 가톨릭에서는 '피정'(避靜)이라는 활동이 있다. 한자대로 해석하면 피해서 고요한 곳으로 간다는 뜻이다. 피해서 고요한 공간으로 혼자 찾아들면 복잡했던 것들이 스스로 자기 자리를 찾을 것이다.